
미국 동부 볼티모어 존스홉킨스대 의대엔 3000여 개 인체 뇌가 영하 80도 냉동고에 저장돼 있다. 한 냉동고 문을 여니 뇌 슬라이드 절편이 담긴 상자들이 하얀 서리로 덮인 채 층층이 쌓여 있었다. 냉동고 문을 닫지 않자 ‘삐’ 하는 경고음이 바로 울렸다. 미묘한 온도 변화에도 민감한 뇌 조직을 보호하는 안전장치다. 이곳은 지난 30여 년간 뇌를 축적하며 세계 최대 규모의 ‘브레인뱅크’(뇌 조직 저장소)가 됐다.
최근 기자가 찾은 존스홉킨스대 의대의 세포공학연구소장인 테드 도슨 교수는 이 브레인뱅크 데이터를 정밀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알츠하이머병·파킨슨병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기존 치료제의 부작용을 극복하고 뇌 속 신경염증 생성을 막아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등 퇴행성 뇌질환이 악화하지 않도록 하는 새로운 기전의 치료제다. 그와 부인 발리나 도슨 존스홉킨스대 의대 교수는 퇴행성 뇌질환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논문이 가장 많이 인용되는 과학자 부부로 노벨생리의학상 후보로 여러 차례 거론되기도 했다.
세계적으로 138개 신약후보물질이 개발 단계에 있지만 아직도 알츠하이머병의 근본 원인과 치료법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이 병의 완치는 불가능하며, 진행을 늦추는 약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것은 단 두 개뿐이다. 일본 에자이와 미국 바이오젠이 공동 개발한 레켐비(성분명 레카네맙), 미국 일라이릴리가 개발한 키순라(성분명 도나네맙)다. 하지만 이들 약 역시 뇌가 붓거나 출혈이 생기는 등 부작용이 심해 의료 현장에서 제한적으로 사용된다. 레켐비와 키순라 모두 노화로 우리 뇌에 쌓이는 ‘아밀로이드 베타’라는 단백질을 제거하면 뇌세포 사멸을 늦춰 치매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는 가설하에 개발됐다. 테드 도슨 교수는 “이 약물들은 인지 기능 개선 효과가 미미하고 부작용이 워낙 커 미국 병원 전문의들의 채택률이 높지 않다”며 “뇌 속에 독성을 띤 ‘타우’라는 단백질을 제거하는 비슷한 기전의 치료 후보물질 역시 개발 중인데 효과를 단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신경세포 사멸을 막는 기전과 신경염증(미세아교·성상교세포 매개)을 막는 기전, 면역계를 통해 질환을 늦추는 기전 등으로 알츠하이머 연구개발(R&D) 트렌드가 옮겨 가고 있다”고 덧붙였다.존스홉킨스대 의대 연구진은 브레인뱅크에서 확보한 알츠하이머병 및 파킨슨병 환자 뇌 조직을 정밀 분석한 결과, 질병 진행 과정에서 활성화된 미세아교세포가 평소보다 훨씬 많은 글루카곤유사펩타이드-1(GLP-1) 수용체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 결과 뇌 속 염증 반응이 심해지고 신경세포가 손상·사멸된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밝혀냈다. 테드 도슨 교수와 존스홉킨스대 의대 교수 출신인 이슬기 디앤디파마텍 대표는 이 발견을 기초로 2018년 국제 학술지 네이처 메디신에 전임상(동물실험) 연구 결과를 게재했다. 이를 계기로 테드 도슨 교수 연구팀과 디앤디파마텍은 신약후보물질 ‘NLY01’을 공동 개발해 현재 미국에서 임상 2상을 진행하고 있다. 비만 치료제용 GLP-1 제제가 췌장과 위장, 뇌 시상하부에 작용해 식욕 억제를 돕는다면, NLY01에 쓰인 GLP-1 제제는 뇌 면역세포에 존재하는 GLP-1 수용체에 결합해 염증 반응을 줄이도록 설계됐다.
연구팀은 또 이 브레인뱅크를 통해 알츠하이머병 및 파킨슨병 환자 뇌의 면역세포에서 ‘RIPK2’ 단백질이 과다하게 발현돼 신경염증을 유발하는 것도 세계 최초로 확인했다. 이는 개발 중인 또 다른 치료 후보물질 ‘NLY02’의 핵심 기전으로 이어졌다. 경구형(알약 제형)으로 개발돼 전임상 효능 시험을 마무리하고 임상 준비 단계다. 테드 도슨 교수는 “이들 치료제 개발에 성공한다면 퇴행성 뇌질환 치료의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발리나 도슨 교수도 “현재 알츠하이머병 치료제가 항체 약물이어서 뇌의 표적부위까지 일관되게 도달하기 어려운데, 경구형 치료제는 표적에 닿기 쉬우며 부작용 조절이 용이하고 효능도 더 좋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볼티모어=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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