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기세가 확연히 수그러들었다. 지난 1월 20일 취임 후 약 10개월 동안 그는 입법부는 물론 사법부까지 좌우하며 사실상 무소불위 권력을 휘둘렀다. 상원과 하원에서 우위를 점한 공화당은 트럼프 대통령 거수기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그의 무리한 요구까지 모두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달 들어 바람 방향이 달라졌다. 공화당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선을 긋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법부도 관세정책을 되돌리라고 판결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지율은 38~39%로 급락했다.
22일(현지시간) 미국 정가에서는 급속도로 ‘레임덕’이라는 용어가 확산하고 있다. 이는 정치 매체 폴리티코가 지난 4일 치러진 주지사 등 선거에서 공화당이 참패한 결과를 분석하며 ‘트럼프 대통령 레임덕이 시작됐다’고 언급하면서 비롯됐다. 이어 제프리 엡스타인 파일 공개 이슈가 불거지면서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의원들은 주요 미디어에서 공공연히 트럼프 대통령의 장악력이 확연히 떨어졌다며 레임덕을 거론했다. JD 밴스 미국 부통령이 공화당 의원에게 당내 갈등을 언급하며 “우리는 다른 점보다 같은 점이 많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호소해야 할 정도다.
공화당 의원들은 내년 상원 35석, 하원 435석(전석)을 다시 뽑는 선거에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다. CNN은 “공화당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외 정책 집중, 가계 부담에 대한 이해 부족, 그의 가족이 부를 축적하는 듯한 모습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며 “레임덕이라는 말을 더 자주 듣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엡스타인 파일 공개 요구 문제로 트럼프 대통령과 반목한 마저리 테일러 그린 공화당 하원의원이 사임을 발표한 것도 공화당의 위기의식을 한층 부추기고 있다. 그가 사임하면 공화당은 하원에서 218석을 차지한다. 민주당(213석)과의 격차가 5석으로 줄어든다. 공화당 의원 중 단 세 명만 반란표를 행사해도 민주당이 표결에서 이길 수 있다.
이미 토머스 매시 의원(공화·켄터키) 등이 공개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반기를 든 점을 고려하면 공화당의 다수당 지위는 누란지위인 셈이다.
트럼프 정부는 무역확장법 232조(품목관세 근거법)를 활용하거나 무역법 301조 및 122조(150일간 최대 15% 관세 부과 가능), 관세법 338조를 이용해 미국산이 차별당한 나라에 최고 50%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 등을 살피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모두 단서 조항, 사용 범위 제한 등이 있는 만큼 IEEPA와 완전히 동일한 효과를 내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IEEPA 패소 시 기존 관세를 환급해줘야 하는 것도 큰 부담이다.
디애틀랜틱은 트럼프 대통령이 전례 없는 행정 권력을 이용해 의회를 복종시키고 법원을 무시하는 등 ‘불도저’처럼 정책을 밀어붙였지만 “10개월 차에 접어든 지금 트럼프 2.0은 처음으로 혼란스러웠던 초창기 모습을 닮아가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공화당이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대안을 벗어날 수 없는 만큼 근본적으로 대오가 완전히 흔들릴 것이라고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평가도 많다. 폴리티코는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대체 불가능한 존재”라며 “선거 승리를 위해 그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의원이 많다”고 설명했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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