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5년 출범한 대한적십자사가 올해로 120주년을 맞았다. 대한적십자사는 전쟁과 재난, 감염병 등 국가적 위기마다 생명과 존엄을 지키는 안전망 역할을 해왔다. 최근에는 재난을 예방하고, 한국의 인도주의 역량을 해외로 전파하는 방식으로 활동 범위를 국내외로 넓히고 있다.
대한적십자사의 역사는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과 맞닿아있다. 대한적십자사가 만들어진 당시는 대한제국 시기로, 의료체계가 미비했고 생계가 어려워 치료받기 힘든 환자들이 많았다. 대한적십자사는 빈곤과 질병, 전염병에 맞서 구휼·보건 활동을 펼쳤다. 1910년 일제 강점기 이후 대한적십자사는 일제에 의해 강제로 문을 닫았다. 1919년 임시정부가 ‘대한적십자회’로 재조직하면서 활동을 이어갔다. 독립운동 시기 대한적십자사는 독립군 부상자 치료와 독립운동가 가족 지원 등 민족운동 기반의 인도주의 활동을 펼쳤다. 필요한 경비는 독립운동을 지지한 국민들의 회비로 마련됐다.
1945년 광복과 함께 대한적십자사가 부활했다. 5년 후인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대한적십자사는 대규모 이재민 지원, 피난민 구호, 전쟁고아 보호, 의료지원 등 국가적 위기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해외 적십자사와 협력해 구호물자를 확보했고, 전후 의료·보건 인프라가 취약했던 시기에는 사회 안전망 구축에 나섰다.
이 시기 대한적십자사는 1948년 응급구호법 단행본 간행, 1953년 미국적십자사 초청을 통한 수상 안전 강사 과정 도입, 1958년 국립혈액원 인수 등의 성과를 거뒀다. 1974년엔 4·19혁명을 계기로 확산하던 매혈을 헌혈 제도로 정착시켰다. 대한적십자사는 1970년대 중반까지 14개 병원과 도서 지역 병원선을 운영하면서 국민들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고, 국내 최초의 권역 재활병원 설립도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0년대 산업화·도시화로 대형 재난이 잇따르자 대한적십자사는 재난 대응 체계를 강화했다. 성수대교·삼풍백화점 붕괴, 대구 지하철 참사 등 국가적 충격을 남긴 현장에서 긴급구호와 의료지원, 현장 봉사 활동을 신속하게 수행했다. 대한적십자사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상 재난관리책임기관으로 지정되며 국가 재난 대응 체계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대한적십자사는 ‘미래 100년’을 위해 인도주의의 확장을 추진하고 있다. 위기 발생을 예측하고 예방을 강화하는 ‘선제적 인도주의’ 전환을 강조한다. 지역 단위 예방 교육, 조기경보 시스템, 재난 심리회복지원센터 운영 등을 통해 지역사회 재난복원력을 높이는 것이 핵심이다.
전쟁과 빈곤 속에서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았던 한국은 이제 튀르키예와 우크라이나, 수단 같은 재난 지역에서 긴급구호와 재건 사업을 수행하는 국가로 위상이 달라졌다. 국제적십자운동과의 협력을 강화하며 한국형 인도주의 모델의 국제 확산에도 나서고 있다. 이는 단순 지원을 넘어 인류 보편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책임 확대라는 의미도 갖는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