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이 글로벌 지속가능성 공시 제도의 향방을 가르는 분기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올해는 유럽연합(EU)의 기업지속가능성 보고지침(CSRD)에 따른 첫 의무 공시가 본격화되고,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가 제정한 공시기준(IFRS S1·S2)을 도입·정렬하려는 국가가 30개에 이르면서 기후·ESG 정보가 사실상 ‘제2의 재무제표’로 자리 잡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ISSB 기준 확산…‘TCFD는 역사 속으로’
글로벌 차원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ISSB 기준의 빠른 확산이다. ISSB는 2023년 기후·지속가능성 공시기준인 IFRS S1(지속가능성 관련 재무정보 일반 요구사항)과 IFRS S2(기후 관련 공시)를 발표한 뒤 2025년까지 두 기준의 전 세계 도입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2025년 9월 말 기준 17개 관할 지역이 ISSB 기준을 자발적 또는 의무 기준으로 채택했으며, 추가로 19개 관할 지역이 도입을 공식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캐나다·나이지리아·브라질 등은 상장사나 공시 의무 기업을 대상으로 2024~2026년 ISSB 기준을 단계적으로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기후 공시의 ‘원조 규범’으로 불리던 기후변화 관련 재무정보공개 협의체(TCFD)는 2023년 마지막 보고서를 끝으로 공식 해산했다. TCFD의 모니터링 역할은 2024년부터 IFRS 재단 산하인 ISSB가 넘겨받았다. 사실상 TCFD 권고안이 ISSB 기준에 흡수·반영되면서, 글로벌 공시 체계가 ISSB를 중심으로 정렬되는 흐름이 강화되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도 호주·싱가포르 등이 ISSB에 정렬된 기후 공시를 2025년 이후 회계연도부터 단계적·의무적으로 도입하기로 하면서 재무제표와 지속가능성 공시를 하나의 패키지로 요구하는 흐름이 가속화되고 있다.
유럽, CSRD 첫해…동시에 ‘후퇴 논란’도 점화
EU에서는 2025년이 CSRD의 첫 의무 공시 연도에 해당한다. 기존 비재무 보고지침(NFRD) 적용 대상이던 대형 상장사(웨이브 1) 등은 2024 사업연도 정보를 ESRS 기준에 맞춰 공시해야 하며, 관련 보고서는 2025년부터 순차적으로 공개되고 있다.
문제는 이후 일정이 한층 복잡해졌다는 점이다. EU는 2025년 5월 ‘스톱 더 클락’ 지침을 통해 대형 비상장사(웨이브 2)의 CSRD 적용 시점과 상장 중소기업·소형 금융기관(웨이브 3)의 적용 시점을 각각 2년씩 늦추는 방안을 제안했다. 반면 비EU 기업 모회사에 대한 연결 기준 공시 의무(웨이브 4)는 2028 사업연도(보고는 2029년)로 유지돼 한국 등 역외 대기업의 부담은 그대로 남아 있다는 지적이다.
7월에는 1차 ESRS에 대한 ‘퀵 픽스(quick-fix)’ 개정이 이뤄져 초기 적용 기업의 경우 2025~2026 사업연도까지는 2024년 수준 이상의 추가 데이터포인트를 요구하지 않도록 유연성을 부여했다. 동시에 EFRAG는 데이터포인트를 절반 이상 줄이는 수정 ESRS 초안을 공청에 부치며 “규제의 틀은 유지하되 기업 부담은 완화한다”는 방향의 손질을 시도하고 있다.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11월 유럽의회는 ‘옴니버스 I’ 패키지와 C SDDD 개정안에 대한 협상 지침을 채택하며, CSRD·CSDDD의 적용 대상을 축소하고 일부 기후 전환 계획 공시 의무를 삭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경쟁력을 명분으로 지속가능성 수준을 실질적으로 후퇴시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낳
고 있다.
韓, 지속가능성 공시 의무화 ‘안갯속’…2026~2030년 전망도
한국은 현재 기준은 마련됐지만, 본격적인 의무화 시점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금융위원회는 2021년 ESG 공시 로드맵에서 2025년부터 단계적 의무화를 예고했으나, 2023년 10월에는 ‘2026년 이후’로 연기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2024년 4월에는 “의무화 시기는 아직 확정하지 않았다”는 보도 설명 자료를 내고, 국내외 동향을 보면서 추후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한국회계기준원 산하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는 2024년 4월 30일 국내 지속가능성 공시기준 공개 초안을 발표했지만, 이 역시 확정된 것은 아니다. 제1호 기준은 ISSB의 IFRS S1을 반영한 ‘지속가능성 관련 재무정보 일반 요구사항’, 제2호 기준은 IFRS S2를 토대로 한 ‘기후 관련 공시’, 제101호는 선택적 추가공시 기준으로, 국제 기준과의 정합성을 전제로 국내 여건을 반영하는 구조다. 금융위는 자산 총액 2조 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를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구체적 연도와 적용 범위는 여전히 ‘검토 중’ 단계에 머물러 있다.
전문가들은 향후 3~5년간 지속가능성 공시 흐름을 두고 속도는 조정되겠지만, 방향은 유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ISSB 기준은 각국 규제의 ‘글로벌 공통분모’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각국이 자국 규제를 설계할 때 ISSB를 기본 골격으로 삼고, 세부 요구사항만 조정하는 방식이 확산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EU는 완화·간소화 기조 속에서도 CSRD의 뼈대는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옴니버스 패키지와 스톱 더 클
락 조치로 일부 일정과 적용 범위는 늦춰졌지만, 대형사와 역외 대기업에 대한 공시 의무, 특히 2028년 사업 연도 기준의 연결 공시는 현재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데이터포인트 축소, 중소기업 부담 경감 같은 조정 흐름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한국은 2026년 이후 단계적 의무화가 유력한 시나리오로 거론된다.
금융당국이 이미 ‘2026년 이후 일정 규모 이상 상장사부터 순차 적용’ 방안을 검토 중인 만큼 KSSB 기준이 최종 확정되는 2026년 전후로 보다 구체적인 공시 의무화 로드맵이 제시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자산 총액 2조 원 이상 코스피 대형사가 1차 대상이 되고, 이후 코스피 전 상장사 및 코스닥 대형사로 확대하는 단계적 도입안이 시장에서 거론되고 있다.
이미경 한경ESG 기자 esit91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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