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거품 논쟁은 미국 시장으로 한정해 봐야 합니다. 한국은 수혜국이지 피해국이 아닙니다."유엔(UN) 경제사회이사회 특별협의지위기구인 'UN 지속가능개발목표(SDGs) 협회'의 김정훈 대표는 최근 한경닷컴과의 인터뷰에서 글로벌 금융시장의 최대 논쟁거리로 떠오른 'AI 거품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김 대표는 증권업계에서 '국제통(通)'으로 꼽힌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증권거래위원회(SEC) 등 핵심 기관과 직접 소통하며 글로벌 네트워크를 쌓았다. 지난 9월 이재명 대통령이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초청돼 투자 설명회(IR)를 진행할 수 있었던 데는 김 대표의 역할이 컸다는 후문이다. 현재 그는 한국거래소의 선임 사외이사와 유가증권시장위원회 위원을 겸하고 있다.
김 대표는 "메타와 오라클, 알파벳 등 빅테크가 초대형 AI 데이터센터와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확보하기 위해 '빚투'(빚내서 투자)에 나선 데다 공매도 거물들의 지적이 잇달며 심리적으로 부담이 커졌다"고 짚으면서도 AI 시장 전체를 거품으로 단정하는 건 과도한 해석이라고 했다.
특히 반도체와 AI 인프라 공급 측면에서 한국 시장은 오히려 수혜가 예상된다는 분석이다.
그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처럼 고대역폭메모리(HBM)·더블데이터레이트(DDR)·파운드리 등 필수 인프라를 공급하는 기업, AI 서버 전력·냉각·네트워크·보안·로봇·헬스케어처럼 실사용 단계로 확장되는 분야는 오히려 향후 5~10년에 걸쳐 구조적 수요 증가가 예상된다"며 "미국의 고평가 빅테크들은 경계하되, 한국 반도체·AI 인프라 기업에선 장기적으로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김 대표는 최근 국내 조정장에서 외국인 수급이 흔들리는 건 일시적이라고 봤다. 그는 "외국인 매도는 한국이 위험하기 때문이 아니라, 미국발 AI 밸류에이션 부담과 환율 변수에 따른 포트폴리오 조정 성격이 더 크다"고 말했다.
아울러 증시의 지원군으로 개인 투자자들이 부상했단 분석이다. 개인들은 앞서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직접 주식을 사 모으며 '동학개미운동'을 일으켰다. 증시를 떠받치는 한 축으로 자리 잡았지만 여전히 테마주와 단기매매 위주로 대응하는 경향이 컸다. 하지만 최근 들어선 현물 주식을 순매도하면서도 시장과 섹터 중심의 상장지수펀드(ETF) 등을 대거 매수하는 이른바 '제2의 동학개미운동'이 시작됐다는 평가다.
"최근 NYSE를 방문했을 때 경영진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국 개인투자자 비율이 높단 점을 흥미로워했습니다. "미국도 그렇게 넓혀 나가고 싶다, 비결을 알려달라"는 말까지 할 정도였죠. '강한 개인 수급'이라는 독특한 형태의 한국 증시에서 개인들이 단순 종목 베팅을 벗어나 지수와 섹터 중심의 투자에 나선 건 고무적입니다. ETF와 연금 등 묵직한 자금의 비중이 늘면서 지수를 안정적으로 받쳐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김 대표는 연말까지 코스피지수가 3800~4300선 범위에서 박스권 장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외국인 차익 실현, 원화 약세, AI 밸류에이션 부담 등의 요인 속에서다. 다만 내년 상반기에는 코스피가 4500선을 타진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반도체와 금융, 내수, 서비스 등 실적과 밸류에이션이 뒷받침되는 업종 중심의 선별적 접근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했다. 덧붙여 "일부 증권사가 강세장 시나리오로 7500선을 제시하기도 했는데, 지나친 장밋빛 전망은 오히려 시장을 과열시킨다"며 "냉정한 현실 인식 위에 정책적, 기업적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고 했다.
코스닥지수가 상대적으로 부진한 이유는 AI와 반도체, 2차전지, 자동차 등 대형주 중심 랠리에서 소외됐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코스피지수가 올 들어 전날까지 60.29% 상승하는 동안 코스닥지수는 26.28% 오르는 데 그쳤다.
다만 김 대표는 코스닥의 부진에 대해 시장과 제도의 영향도 크다고 봤다. 그는 "지배구조가 불투명한 기업들이 여전히 많고, 상장폐지와 관리종목도 계속 늘면서 시장 신뢰 기반이 흔들린 것"이라며 "개미 투자자들도 시장 흐름에 지친 모습이어서, 외국인이나 기관까지 적극적으로 들어오기 쉽지 않다"고 했다.
특히 거래소의 역할을 강조했다. 한계기업을 시장에서 정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장 가능성이 큰 기업을 끌어들이기보다 걸러내는 데에만 힘을 쓰면 코스닥이 분위기를 반전시키긴 어렵다는 지적이다.
"해외 거래소는 기업을 '심사'하는 기관이 아니라 '유치'하는 플랫폼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NYSE는 상장 기준을 못 맞추는 기업이라도 기술력이 있으면 먼저 '인터내셔날 데이(International Day)' 등 행사에 초청해 관계를 만들어요. 전도유망한 기업이 장기적으로 뉴욕 시장에 상장하도록 적극적 유치 전략을 펴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 거래소는 상장 심사부터 상장폐지까지 전 과정의 제도 운영이 보수적입니다."
김 대표는 "거래소가 국내 기업이 아닌, 나스닥에서도 탐낼 만한 기술을 가진 해외 유망기업을 한국 시장에 데려올 전략적 활동도 필요하다"며 "보다 적극적으로 해외 시장으로 나가 로드쇼를 열고, 글로벌 테크 기업들과 직접 소통하면서 한국 시장이 먼저 초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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