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 기후금융이 이미 ‘조(兆) 단위’ 시장으로 자리 잡으면서 자본시장의 새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필요한 규모와 실제 조달액 사이의 간극이 여전히 크고, 선진국의 정치·외교 변수와 규제 피로감까지 겹치면서 2026년은 ‘양적 확대와 신뢰 회복’을 동시에 시험받는 분기점이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기후금융을 본격화하는 시점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025년, 늘어나는 기후 자금에도 턱없이 부족
국제 분석 기관 클라이밋폴리시이니셔티브(CPI)에 따르면 파리기후변화협약 목표 달성을 위해 필요한 기후 투자 규모는 연간 6조~9조 달러 수준으로 추산된다. 2030년까지 세계경제를 녹색 전환 궤도로 올려놓기 위해선 이 정도 규모의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 투자자들이 기후 리스크와 전환 기회를 정량적으로 비교할 수 있도록 하는 공시·회계 체계는 기후 금융의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의 기후 공시 기준인 IFRS S2는 2024년부터 발효됐고, 각국 금융당국은 이를 자국 규제에 편입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기후 관련 재무정보를 사실상 ‘제2의 재무제표’처럼 다루려는 흐름은 녹색채권, 전환채권, 지속가능연계대출(SLL) 등 다양한 구조의 기후금융 상품 설계로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EU의 지속가능금융 공시규정(SFDR) 개편, 기업지속가능성 보고지침(CSRD), EU 택소노미를 둘러싼 부담 논쟁은 “규제의 틀은 유지하되 복잡성과 비용을 줄여야 한다”는 압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형 기관투자가들은 “규제 약화는 오히려 투자 불확실성을 키운다”며 EU에 ‘그린 룰 후퇴 자제’를 촉구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그럼에도 기후금융은 여전히 국제 정치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미국이 2025년 들어 기후 피해를 입은 개도국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기금에서 탈퇴하고, 이미 약속했던 출연금마저 철회하고 있어서다.
브라질 벨렝에서 열린 COP30 협상에서는 화석연료 단계적 감축 로드맵과 기후금융 확대를 둘러싸고 선진국·개도국 간 간극이 여전히 좁혀지지 않은 채 마무리됐다. 재난에 취약한 국가들이 연간 1200억 달러 수준의 적응 재원 삼중 확대를 요구한 반면, 일부 공여국은 재원 확대를 화석연료 전환 약속과 연계하려 하면서 교착상태가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전된 내용도 있다. 기후변화 적응 재원의 ‘3배 확대’ 목표다. 당초 아프리카·취약국 그룹은 2030년까지 연간 1200억 달러 수준의 적응 재원 명시를 요구했지만, 최종 문구는 2035년까지 적응 재원을 최소 3배로 늘리기 위해 노력한다는 표현으로 정리됐다. 구체적 금액과 경로가 빠지면서 타임라인도 느리고, 액수도 모호하다는 비판이 동시에 제기됐다.
또 하나의 중요한 결과는 파리협정 제9조(기후 재원 조달)에 근거한 2년짜리 기후금융 작업 프로그램(Work Programme on Climate Finance)이 신설됐다. 당사국들은 고위급 각료 라운드테이블을 정기적으로 열어 신규 기후 재원 조성 목표(NCQG)의 양적·질적 요소, 특히 적응 재원 확대 로드맵을 논의하고, 2026~2027년 동안 세부 설계를 다듬기로 했다.
2026년 기후금융의 키워드는
전문가들은 COP30 이후 2026년을 기후금융의 실행력이 본격적으로 시험대에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무엇보다 COP29에서 이어진 NCQG와 바쿠?벨렝 로드맵의 구체화가 2026년 최대 과제로 떠오를 전망이다.
COP30에서 출범하는 2년의 작업 프로그램은 2026~2027년까지 3000억 달러·1조3000억 달러 목표의 재원 구성을 둘러싸고, 보조금과 대출, 민간 레버리지 비율, 공적·민간 자본 역할 부담, 국가·지역별 배분 원칙 등을 둘러싼 기술·정치 협상을 이어갈 전망이다. 2026년 튀르키예(안탈리아)에서 열릴 예정인 COP31은 이 로드맵의 신뢰도를 가늠하는 첫 중간 점검 무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적응 재원 3배 확대의 신뢰 곡선을 만들 수 있느냐도 관전 포인트다. 벨렝 패키지는 2035년까지 방향만 제시한 만큼 실제로는 2026년부터 선진국의 예산편성과 다자개발은행(MDB) 대출 정책에 적응 재원 확대가 눈에 띄게 반영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COP30에서 채택된 이른바 ‘바쿠 적응 로드맵’은 2026~2028년 적응 목표와 지표를 구체화하고, 국가별 적응 프로젝트 파이프라인을 확충하는 작업을 공식 이행 계획에 포함시킨 바 있다.
동시에, 손실·피해 기금과 녹색기후기금 보강은 2026년에도 가장 민감한 정치 의제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COP30에서 드러난 “기금은 만들어졌지만 돈이 없다”는 비판을 의식해 시민사회와 취약국은 2026년까지 ▲국가별 상향 출연 약속 ▲화석연료·해운·항공 등 ‘오염자 부담’ 기반의 신규 재원 소스 발굴을 본격적으로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기후금융이 피해 당사국에 얼마나 공정할지 여부를 판가름하는 시험대가 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자개발은행 개혁과 민간자본 동원도 2026년 기후금융의 또 다른 핵심 축이다. 바쿠?벨렝 로드맵은 목표 달성을 위해 기존 공적자금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을 전제로 MDB 자본 확충과 민간자본 레버리지를 핵심 수단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26년에는 ▲MDB의 자본 적정성 규칙 완화 ▲보증·후순위 대출 등 위험 분담 메커니즘 확대 ▲블렌디드 파이낸스를 통한 민간투자 촉진 방안이 G20·세계은행·지역개발은행 논의에서 속도를 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는 스케일 확대와 실해역 제고를 동시에 겨냥한 움직임이라는 분석이다.
마지막으로, 정치적 불확실성과 형평성 논쟁도 2026년 기후금융의 상수로 남을 전망이다. COP30 결과에 대해 “다자주의를 간신히 살려낸 ‘생존 타협’이지만, 기후 위기 속도를 따라가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튀르키예 COP31에서는 선진국·개도국 간 재원 규모, 형태(보조금 vs 대출), 접근성·조건(채무 부담, 거버넌스) 등을 둘러싼 공방이 한층 가열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경 한경ESG 기자 esit91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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