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등 첨단 분야 지식재산권(IP)만 1만3000여 개를 보유한 미국 핵심 연구소가 한국에 거점을 마련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의 방대한 제조공정 데이터를 확보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라이다(LiDAR)를 통해 우주에서 매일 지구를 3차원(3D)으로 스캔하는 기술도 연구 중이다. 밤에는 지구를 못 찍는 카메라, 시각화에 한계가 있는 위성영상레이더(SAR) 이미지와 달리 24시간 정밀한 3D 입체 지도를 그릴 수 있는 기술이다. 1946년 스탠퍼드대 부설연구소로 출범한 SRI는 현재 빅테크들을 있게 한 기술들을 탄생시켰다. 미 국방부 고등연구계획국(DARPA) 의뢰로 개발한 인터넷의 전신 ‘아파넷’, 윈도우스와 맥OS 등 컴퓨터 운영체제(OS)의 기틀을 닦은 ‘그래픽유저인터페이스(GUI)’, 그리고 원조 AI 비서인 ‘시리’가 이곳에서 나왔다.
SRI는 1970년 스탠퍼드대에서 독립했다. 1960년대 말 베트남전 장기화로 반전 운동이 확산하고, 학생들의 학비가 SRI의 미군 무기 연구에 쓰여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거세지면서다. 그만큼 SRI는 미 군사 연구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기관으로 꼽힌다. 데이비드 박 글로벌이노베이션랩스(GIL) 제너럴파트너는 “미국에서 전쟁부(국방부)와 가장 밀접한 기관은 매사추세츠공대(MIT)도, 하버드대도 아닌 SRI”라고 강조했다.
SRI 관계자는 “일본이 SRI와 처음 일하기 시작했을 때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지만 지금은 훌륭한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이 많아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고 싶다”고 말했다.
SRI가 추진 중인 목표는 한국 제조 역량과의 결합이다. 스태비시 부사장은 “SRI와 파트너 벤처펀드인 GIL이 한국을 포함한 시장에 딥테크 솔루션을 상용화하기 위해 상호 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부 지원을 받는 비영리 연구기관 SRI 대신 GIL이 SRI의 IP를 한국 등 스타트업·중소기업에 제공하고, 그 대가로 주식이나 로열티 등을 받는 구조다.
SRI가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려는 것은 “학술 논문만 써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스태비시 부사장은 “우리는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IP를 가지고 있다”라며 “IP로 생명을 구하고 가치를 창출하는 게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SRI가 보유한 특허권은 1만3000개가 넘고 매년 400~500개를 추가로 확보하고 있다. 박 GIL 제너럴파트너는 “한국은 대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제조 능력이 탁월하다”며 “여기에 SRI의 IP를 결합하면 엄청난 시너지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테크업계 관계자는 “SRI의 한국 진출은 연구소가 어떻게 생존해야 할지를 보여주는 사례이자 미국이 테크 전쟁에서 한국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고 해석했다.
실리콘밸리=김인엽 특파원 insi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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