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 적 이맘때였다. 아버지가 새 볏짚으로 초가지붕에 이엉을 얹으면서 말했다. “작년에 이엉이 부실해서 비가 몇 번 새더니 벌써 그 아래 자국이 거무튀튀해졌구나. 비가 새고 볏짚이 썩으면 서까래며 나무 뼈대까지 함께 썩기 쉽지. 미리 손을 쓰지 않으면 결국 일이 커지고 낭패를 당한다.”
해마다 지붕을 갈고 새 이엉으로 덮는 게 예삿일이 아니었다. 추수를 끝내고 볏짚을 잘 말린 뒤 한 움큼 정도씩 새끼나 짚 가닥으로 엮어 비가 새지 않도록 촘촘히 깔아야 한다. 잘못하면 기둥이 썩어 큰 공사를 해야 한다. 그러면 노동력이 많이 필요하고 경비도 수월찮게 든다. 기와집이라면 일이 더 복잡해지고 수리비도 몇 배로 커진다.
고려 시대 이규보도 그랬던 모양이다. 그의 글 ‘이옥설’(理屋說·집을 수리한 이야기)이 <동문선(東文選)> 96권에 나온다. “허물어진 행랑채가 있는데, 제대로 버티지 못하게 된 것이 세 칸이다. 어쩔 수 없이 이것을 모두 수리하였다. 그중 두 칸은 장맛비에 샌 지 오래되었지만 알면서도 어물어물하다가 손을 대지 못하였고, 한 칸은 한 번 비를 맞고 젖었을 때 서둘러 기와를 갈게 했다. 이제 와 수리하려고 보니 샌 지 오래된 곳은 서까래·추녀·기둥·들보가 다 썩어 못 쓰게 되었기에 경비가 많이 들었고, 한 번밖에 비를 맞지 않은 재목은 모두 완전하여 다시 쓸 수 있기에 경비가 적게 들었다.”집을 고치려고 보니 오래전 비가 샌 곳은 목재가 다 썩어 몽땅 갈아야 했고 비용도 많이 들었다는 얘기다. 그는 이를 사람에 빗대어 “잘못을 알고서도 바로 고치지 않으면 곧 그가 나쁘게 되는 것이 나무가 썩어서 못 쓰게 되는 것과 같고, 잘못했지만 고치기를 제대로 하면 다시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으니, 이는 가옥 재목을 다시 쓸 수 있는 것 이상”이라고 썼다.
잘못을 알고도 고치지 않는 사람은 썩은 기둥보다 더 큰 문제를 부른다. 반면 잘못을 빨리 고치면 이전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뼈아픈 좌절을 겪어도 스스로 내공을 키우고 성숙해지면 그만큼 큰 재목으로 쓰일 수 있다. 영국 시인 러디어드 키플링은 “만약 모든 사람이 이성을 잃고 흥분해서/ 네 탓이라고 비난해도 냉정을 유지할 수 있다면”으로 시작하는 시 ‘만약에(If)’에서 이렇게 역설했다.
“승리와 재앙을 만나고도/ 이 두 사기꾼을 똑같이 대할 수 있다면/ 네가 말한 진실이 악인들 입에 왜곡되어/ 어리석은 자들을 옭아매는 덫이 되는 것을 참을 수 있다면/ 네 일생을 바쳐 이룩한 것이 무너져 내리는 걸 보고도/ 낡은 연장을 들고 허리 굽혀 다시 세울 수 있다면 (…) 서민과 어울리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고/ 왕들과 함께 거닐면서도 오만하지 않을 수 있다면/ (…) 이 세상 모든 것은 다 네 것이다./ 무엇보다 아들아, 너는 비로소 한 사람의 어른이 되는 것이다!”
이 시는 키플링이 열두 살 아들에게 준 것으로, BBC의 ‘가장 사랑하는 시’ 1위에 두 번이나 뽑혔다. 키플링은 영미권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로 이름을 날렸지만 결점도 많았다. 백인우월주의자에 제국주의자였고, 징병검사 부적격 판정으로 군에 가지 못한 콤플렉스까지 심했다. 이 때문에 눈 나쁜 아들이 두 차례나 신체검사에 불합격했는데도 ‘빽’을 동원해 입대시켰다. 아들은 전장에서 18세로 죽었다. 비탄에 빠진 그는 2행시 ‘묘비명’에서 “우리가 왜 죽었느냐고 누군가 묻거든/ 우리 아버지들에게 속아서 이리 됐다 전하시오”라며 자책하고 몸부림쳤지만 생사를 바꿀 순 없었다.
위대한 교훈의 이면에는 인간의 결점과 한계가 그대로 투영돼 있다. 아무리 명철한 사람에게도 내면에 어두운 면이 있고, 어리숙한 사람에게도 빛이 어느 쪽에서 비치는지 감지하는 눈은 있다. 우리는 대부분 겉보기에 강한 듯해도 실상은 약하기 짝이 없는 ‘카인의 후예’가 아닌가. 5세기 전 셰익스피어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햄릿> 1막3장에 나오는 폴로니우스의 조언을 통해 인생 지침을 전했다.
알다시피 폴로니우스는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다. 셰익스피어는 왜 이렇게 현명한 말을 어리석은 인물의 입에 담았을까. 역설적으로 어두운 곳에 있는 사람일수록 빛나는 현자의 말에 더 매료된다. 절실한 교훈은 절박한 상황에서 나온다. 기독교 초대교회 교부(敎父) 아우구스티누스도 성인 반열에 오르기까지 온갖 방탕과 유혹에 끌려다녔다. 기도 중에도 “나를 바꿔주세요. 그러나 지금 당장은 말고요”라며 번민했다. 그러다가 자신의 부끄러움을 당당하게 대면한 뒤 비로소 진리의 문을 열 수 있었다.
이규보 또한 젊은 날 학업은 뒷전이고 술에 절어 지내다가 과거에 세 번이나 낙방했고 갖은 고생 끝에 중년이 되어서야 빛을 봤다. 73세로 세상을 떠나기 하루 전까지 글을 다뤘던 그는 한때 ‘비 새는 집의 들보’ 신세로 파란만장한 생을 살았기에 큰 그릇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는 집수리가 나랏일과 닮았다며 “백성에게 심한 해가 될 일을 안일하게 내버려두고 바꾸지 않다가 백성이 못살게 되고 나라가 위태로워진 뒤에 갑자기 개혁하려면 그땐 붙잡아 일으키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지금은 초가집이 없어졌지만 초겨울마다 이엉 얹던 아버지 말씀을 떠올리면서 나를 돌아본다. ‘나’라는 집에 비 새는 곳은 없는가. 들보가 젖거나 기둥이 썩을 일은 없는가. 잘못을 알고도 고치지 않고 어물대는가. 함부로 말하고 절도 없이 행동하진 않는가. 많이 듣고 적게 말하는 걸 잘 지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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