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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주가조작 7000억원만큼이라는데…법원은 '추산 불가'

입력 2025-11-25 20:08   수정 2025-11-25 20:26


국내 상장사 8개 종목에 대해 약 5년간 매수·매도가를 미리 정해놓고 주식을 사고파는 식으로 주가를 띄워 수천억원대 부당이득을 챙긴 것으로 알려진 라덕연 호안투자자문 대표가 2심에서 상당폭 감형을 받았다. 법원이 인정한 시세조종 인정 금액이 확 줄어든 까닭에서다. 금융투자업계에선 주가조작범이 특정 종목의 주가 변동에 대해 정확히 얼마만큼 영향을 줬는지 규명하기 어려운 게 고질적인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역대급 주가조작 사례…징역형 17년만큼 '감형'
2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날 서울고법은 라씨 등의 시세조종(주가조작) 혐의 등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기존 대비 확 줄어든 형량과 추징금·벌금 판결을 냈다. 라씨는 1심에서 징역 25년이었던 형량이 2심에선 8년으로 바뀌어 1심 대비 17년이 줄었다.

라씨에 대한 추징금은 1심 1944억8675만원에서 2심 1815억5831만원으로 약 130억원 줄었다. 벌금은 약 1465억원으로 바뀌지 않았지만, 이는 검찰이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재판부에 선고를 요청한 벌금 규모(2조3590억원)에 비하면 6.2% 수준이다.

고액 투자자 모집을 전담하며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라씨의 측근 변모씨, 전직 프로골퍼 안모씨도 각각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으로 감형됐다.

라씨 등은 불법 유사투자자문업체를 차린 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각종 수법으로 8개 종목의 주가를 조작해 7300억원이 넘는 부당 이익을 올린 혐의(자본시장법 위반)를 받고 있다. 당시 적발된 주가조작 사례 중 최대 규모다.

이들은 의사 등 전문직 투자자와 고액 자산가 등을 모으고, 투자자 명의로 개통한 휴대전화를 넘겨받아 해당 휴대전화로 주식거래를 하는 식으로 대규모 시세조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계좌를 통해선 차액결제거래(CFD)를 통해 레버리지를 대폭 끌어 거래하기도 했다. 거래 규모를 늘리면 더 빠르게 주가를 움직일 수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라씨 일당은 그간 재무상태에 비해 저평가된 주식을 '발굴해 장기매수하는 전략을 사용했을 뿐이라고 주장해왔다.
'50억 이상 부당이득 본 주가조작' 혐의도 무죄
검찰은 당초 "증거에 의하면 피고인들이 7377억원 상당의 이익을 얻었다"고 법원에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라씨 등의 가장 주요 혐의인 '이익액 50억 이상 시세조종'에 대해선 1심에 이어 2심도 무죄로 봤다. 이익액을 구체적으로 특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항소심 재판부는 "검사는 시세조종 범행 관련 거래의 총수입에서 거래를 위한 총비용을 공제하는 방법으로 이익액을 산정했지만, 상당 기간에 걸친 피고인들의 시세조종 기간에 여러 복합적인 주가 상승·하락 요인이 작용하고 있었다"며 "또한 법원에서 무죄로 판단하는 사람들, 라씨 조직에 위임하지 않은 계좌, 차액결제거래(CFD) 계좌 등을 통한 이익액을 정확히 제외해 이익액을 산정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했다.

라씨 등의 주가조작 시기에 코로나19,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증시에 큰 영향을 미친 굵직한 사건이 많았다보니 라씨 등의 수법이 8개 종목의 주가 등락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발라낼 수 없다는 얘기다.

금융당국 안팎에 따르면 이는 주가조작범에 대해 유죄가 확정돼도 실제 형량은 미미한 고질적인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법적으로 주가조작과 부당이득 규모간 인과 관계를 명백히 입증할 수 없는 만큼, 판결이 벌금형이나 집행유예 등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전직 금융감독당국 관계자는 "주가조작범이 1년간 시세 조종을 시도한 종목 주가가 150% 올랐다고 한들, 현실적으로 이 기간 상승폭 전부에 대해 주가조작범 책임을 지울 수는 없다"며 "상승세를 본 일반 투자자들이 단순 투자를 위해 몰려들면서 주가가 추가로 오르거나, 주요국 금리 등 영향으로 증시 전반이 움직이면서 해당 종목 주가도 영향을 받는 경우 등이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CFD 쓰면 주가조작이라 볼 수 없어' 규정상 사각지대도
항소심 재판부는 라씨의 '이익액을 알 수 없는 시세조종' 혐의도 1심이 유죄로 인정한 부분의 약 3분의 1만 인정했다. 당초 1심은 라씨 일당이 통정매매·고가매수·물량소진·시가관여·종가관여·허수매수 등 수법을 3만회 이상 동원해 주가조작을 했다고 봤지만, 항소심은 이를 약 1만회로 파악했다.

가장 큰 이유는 라씨 일당 주가 조작 수법의 핵심인 CFD 계좌가 항소심 재판부가 인정한 주가조종 수단에서 빠져서다.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시세조종은 '상장증권 또는 장내파생상품의 매매 또는 위탁·수탁' 과정에서 이뤄진다. 그런데 CFD는 장외파생상품이다. 즉 법적으로는 CFD를 통한 주가조작은 처벌할 근거가 없다는 얘기다.

기존엔 부당이득액 기준이 따로 없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검찰은 당초 라씨 일당의 부당이득을 8개 종목의 주가 최고점인 2023년 4월21일을 기준으로 산정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시세조종으로 인한 이익을 산정하려면 주가폭락 사태가 발생한 2023년 4월24일 종가를 기준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며 "피고인들이 주가 폭락으로 시세조종 이익을 현실화하지 못한 점 등을 고려했다"고 했다.

한 형법 전문 변호사는 "주가조작 관련 판결에선 부당이득을 정확히 산정할 수 없다는 게 주요 판결 근거로 종종 거론된다"며 "금융당국과 검찰 등이 추산한 부당이득에 비해 실제로 형량 등에 인정을 받는 액수가 훨씬 적은 경우가 거의 전부인 것도 이때문"이라고 말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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