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귀훈 HD현대중공업 해양에너지사업본부 전무

탄소중립이라는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면서 바다는 더 이상 자원을 퍼 올리는 곳만이 아니라 에너지를 만들어내는(generation)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정부가 2030년까지 해상풍력 보급 목표를 14.3GW에서 20GW로 대폭 상향한 지금, 산업계의 시선이 국내 1위 조선·해양 기업인 HD현대중공업으로 쏠리고 있다.
HD현대중공업 해양에너지사업본부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기존의 해양플랜트 역량을 신재생에너지 분야로 옮기며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본부는 단순한 제조업체의 껍질을 깨는 중이다. 과거 해외 엔지니어링사가 그려준 도면대로 제작하던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을 폐기하고, 독자 모델인 ‘하이플로트(Hi-Float)’와 ‘하이오에스에스(Hi-OSS)’를 앞세워 기본설계(FEED)부터 시운전까지 도맡는 ‘토털 솔루션 프로바이더’로 체질 개선에 나섰다.
변화의 폭은 해상풍력에 그치지 않는다. 소형모듈원전(SMR), 탄소포집·저장(CCS) 등 미래 에너지 기술을 아우르는 포트폴리오 다각화는 불확실한 글로벌 시장에 대응하는 생존법이다. 국내외 공급망을 하나로 묶는 ‘앵커링(anchoring)’ 역할을 자처하며, 한국형 해양에너지 생태계의 구심점이 되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한경ESG〉는 울산에서 설귀훈 HD현대중공업 해양에너지사업본부 전무를 만나 바다 위에서 다시 쓰이고 있는 대한민국 에너지 산업의 지도와 미래 전략에 대해 들어봤다.
- 2026년 이후 글로벌 규제와 에너지 전환의 흐름 속에서 HD현대중공업 해양에너지사업본부의 방향성은 무엇인가.
“글로벌 탄소중립 및 에너지 수요 증가 트랜드에 따라 신재생에너지 부문의 성장 잠재력은 매우 클 것으로 기대된다. 또 정부가 탈탄소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신재생에너지 확대 의지를 보이고 있다. 현재 355MW 정도인 해상풍력 용량 수준을 고려하면 40배 이상 늘리겠다는 것이다. 또 정부가 해상풍력특별법과 계획 입지 제도를 도입해 한국 해상풍력 산업의 개발 속도를 높여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산업계 입장에서는 이런 정부의 계획이 매우 고무적이다. 글로벌 트렌드를 보면 영국은 이미 세계 최대 수준인 15GW에 달하며, 2030년까지 최대 50GW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대만도 현재 3.6GW에서 2030년까지 13GW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하고 있다. 국내외 시장의 흐름 속에서 다양한 사업 기회를 포착하고 있다.”
- 기존 주력 사업인 해양플랜트와 신사업인 해상풍력은 어떤 차이가 있나.
“해양플랜트의 경우 발주사가 이미 원하는 사양이 명확하고, 사양에 따라 주문 제작(Tailor-made)으로 엔지니어링과 조달·제작·운반·설치·시운전을 하고 있다. 해상풍력은 성격이 조금 다르다. 개발사는 발전용량과 수명주기를 다할 때까지 전력 품질을 유지하는 거시적 목표를 요구하면서 각각 단계에 기술적 해법에서는 수주사(시공사)의 재량을 요하는 경우가 많다. 또 해상풍력은 플랜트와 달리 환경 데이터 구축과 리스크 분석을 수주사에 맡기는 경우가 많다. 환경 데이터와 리스크 분석은 설계 단계부터 반영되어야 한다. 이 때문에 사전 준비된 고유 모델(own model)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 해상풍력 계획 입지 제도 참여를 위한 대응 전략은 무엇인가.
“계획 입지는 정부가 예비 지구 선정부터 기본설계까지 틀을 마련해주기에 기가와트(GW)급 대형 프로젝트가 연속적·표준화된 방식으로 추진될 수 있다. 인허가와 기본설계가 마무리되면 설계·조달·시공을 하나로 묶는 턴키(turn-key) EPC 발주가 자연스럽게 확대될 것이다. 조선·해양플랜트 역량을 동시에 갖춘 HD현대중공업의 경쟁력이 직접적으로 드러날 수 있는 분야다. 앞서 말한 것처럼 표준 설계 기반으로 주요 공급망을 고려한 양산 체계를 만들면 제조원가도 낮출 수 있고,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으며, O&M 단계에서도 OpEx(운영 지출)를 줄일 수 있다.”
- 최근 공개한 독자 부유체 모델 하이플로트가 그 결과물인가.
“그렇다. 하이플로트는 우리가 독자 개발한 부유식 해상풍력 모델로, 최근 국제 인증기관의 기본 승인(AiP)을 획득했다. 15MW급에서 18MW급으로 대형화되는 추세에 맞춰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거쳤다. 기존 타사 모델이 소형 터빈 위주의 편심형(기둥이 한쪽으로 쏠린 형태)이었다면, 본부는 초기부터 중앙 중심형으로 설계해 성능 안정성을 높이고 대형화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다. 이제 HD현대중공업은 단순 제작을 넘어 ‘기본설계(FEED)’를 수행하는 단계에 진입했다. 제주 실증 단지에서의 8MW 부유체 기본설계를 수행했으며, 400MW급 서남해 시범사업 해상변전소 기본설계를 마치고 상세설계를 수행 중이다. 반딧불이 해상풍력 공사에 부유식 해상변전소 기본설계도 수행을 완료했다. 이를 바탕으로 올해 500MW급 HVAC 해상변전소 모델(Hi-OSS)를 자체 개발했고, 800MW와 1GW급 이상으로 확대한다.
이러한 국내 시장 트랙 레코드를 바탕으로 향후 스코틀랜드, 대만 등 해외 시장으로 진출할 계획이다.”
- 경쟁사 대비 해양에너지사업본부만의 차별화된 강점은 무엇인가.
“우리는 1975년부터 총 98기의 고정식 플랫폼, 28기의 부유식 FPSO(원유 생산·저장·하역 설비) 등 고난도 해양플랜트 프로젝트를 수행해왔다. 플랜트는 비정형화된 공정을 정형화해 납기와 품질을 준수해야 하는 고도의 ‘시퀀스 워크(sequence work, 연속 공정 관리)’ 역량이 필요하다. 우리는 검증된 공급망과 구조, 도장, 프로세스, 기계, 전기, 통제·통신 등 다양한 분야의 엔지니어링 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또 대형 상선 2척과 부유식 해상설비 1기를 동시 제작할 수 있는 드라이독(H-Dock)과 1만 톤급 해상 크레인 등 압도적 건조 및 조달 인프라를 갖췄다. 전 세계적으로 해양플랜트의 전체 수명주기를 경험해본 기업은 손에 꼽는다. 이 노하우를 살려 해상풍력 분야에서도 개념 설계(pre-FEED), 기본설계 등 사업 초기 단계부터 기술역량을 활용한 주도권을 쥐고자 한다. 제작과 설치라는 하드웨어적 강점에 더해 설계와 프로젝트·공급망 관리 등 소프트웨어 역량까지 결합하는 것이 우리의 전략이다.”

- 제작 중심에서 ‘설계’로 영역을 확장하게 된 계기가 있나.
“2010년대 해양플랜트 불황기를 겪으며 뼈저리게 느낀 교훈이 있다. 자체적 기본설계 역량이 없으면 프로젝트 도중 발생하는 잦은 설계 변경에 취약하고,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고유의 기본 모델이 있어야 시장 변화에 맞춰 신속한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 개인적인 경험을 말하자면, 입사 2년 차에 미국 휴스턴에서 FPSO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지정설계사는 미국 아멕(Amec)사가 맡고, 우리는 EPC만 담당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아멕(현재 wood사)에 하청을 줄 만큼 성장했다. 26년 만에 단순 시공사를 넘어 프로젝트의 전 주기를 수행하는 회사로 발돋움한 것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
- 국내외 공급망을 아우르는 앵커링 역할을 강조했는데.
“해상풍력 산업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는 개별 기업으로 움직이기보다 개발사와 공급망 전체를 묶어주는 ‘앵커(anchor, 구심점)’ 역할이 필수적이다. 덴마크의 경우 EPC사, 터빈사, 정책금융기관이 원팀으로 뭉쳐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한다. 우리도 이를 벤치마킹해야 한다. 고객사(발주처)는 초기 투자비가 조금 더 들더라도 운영 지출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는 최적의 설계를 원한다. 현재 서남해 지역에서 고정식 풍력 상업 운전을 준비 중이며, 부유식 풍력도 실증 단계다. 설계부터 터빈, 변전 설비, 발전 연계까지 국내 공급망을 하나로 엮어내는 앵커링 역할을 HD현대중공업이 수행하겠다.”
- 산업 활성화를 위해 정부에 제언한다면.
“첫 번째는 실증 사업 확대다. 예산 제약이 있겠지만, 국내 기업의 트렉 레코드 확보를 위해 필수적이다. 두 번째는 금융이다.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만큼 정책금융과 민간의 프로젝트 파이낸싱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 한다. 세 번째는 인력 양성이다. 앞으로 한정된 자원으로 국내 해상풍력의 경쟁력을 갖추려면 엔지니어 인력을 비롯해 제작 인력, 프로젝트 매니지먼트(PM) 전문 인력을 국가 차원에서 양성해야 한다.”
- 해상풍력의 경제성 확보(LCOE 저감)를 위한 방안은.
“글로벌 투자사들이 한국 시장을 얼마나 매력적으로 느끼느냐가 관건이다. 최근 쉘, 토탈에너지스 등의 사업 철수나 인력 감축 움직임은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시장 매력도를 높이려면 현재 다소 높은 균등화 발전 원가(LCOE)를 낮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만의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대만은 국산화율 기준이 없었으나 2단계부터는 주요 부품 27개 품목에 대해 국산화율 60%를 의무화하면서 국내 산업 육성을 하였지만 대신 LCOE가 증가했다. 그래서 3단계부터는 주요 부품의 최소 구매 금액만 정하고, 자국 공급망 이용 시 가점을 주는 유연한 방식으로 전환했다. 이처럼 투자 유인을 높이면서도 산업을 육성할 수 있는 정교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 기존 해양플랜트와 신사업 간 포트폴리오 비중은 어떻게 가져갈 계획인가.
“현재 해양플랜트가 매출과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향후 시장 환경을 보고 해상풍력, SMR, CCS 등 신사업 체계를 확대해나갈 것이다. 클락슨의 전 세계 에너지 예측 전망 자료에 따르면, 해양 오일 & 가스 발전 비중이 현재 16% 정도에서 2050년 8% 수준까지 낮아질 전망이다. 이 공백을 신재생에너지와 원전이 메울 것으로 예상된다. 중장기적으로는 전통 에너지와 신재생에너지 양대 축을 유연하게 운영하는 ‘하이브리드 포트폴리오’를 완성할 것이다. 시장이 열리는 상황을 보고 유연하게 밸런싱을 가져갈 것이다.”
- 글로벌 프로젝트의 불확실성에 대한 대비책은.
“각국의 에너지 정책은 지정학적 결정에 따라 언제든 변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특정 에너지원보다 전통 에너지, 풍력, SMR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수립해 대응하고 있다. 어떠한 시장 변화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조직 역량을 갖추는 것이 목표다. 미국에서는 해상풍력 프로젝트가 단기적 조정 국면이지만, 유럽과 아시아를 중심으로 2030년 전후로 에너지 안보와 탈탄소 정책에 따라 사업 참여 기회가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유럽은 아시아 대비 제조 인프라가 약하다는 점이 기회 요소다.”
- CCS나 SMR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CCS는 이미 동해가스전 활용 통합 실증모델 기본설계를 국책 과제로 수행했다. 또 2023년에 해상 설비에 대한 기본 인증(AiP)을 획득했다. 현재 동해 가스전을 활용한 CCS 사업 참여를 국내 파트너사와 추진 중이며, 동남아 폐유정을 활용한 CCS 프로젝트에 참여를 검토 중이다. 조선 분야에서는 LCO2 운반선을 수주해 건조 중이며, 40K LCO2 운반선에 대한 AiP를 확보했다. SMR은 정밀 가공, AI 용접, 3D 프린팅 등 하이테크 생산 기술 접목이 필요한 분야다. 상용화 시점에 맞춰 즉시 생산 및 물류가 가능하도록 설비투자 및 기술개발을 진행 중이다.”
- SMR 선두 주자 테라파워와의 협업 및 ITER 프로젝트 진행 상황은.
“HD현대그룹은 테라파워와 함께 나트륨프로젝트라는 미국 와이오밍주 실증 사업에 들어갈 원자로 부품의 설계·제작·운송을 수행하고 있으며 글로벌 제조 공급망을 더욱 확장하기 위한 전략적 협력도 검토 중이다. 또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프로젝트에 참여해 핵심 설비인 진공 용기와 포트(port)를 성공적으로 공급한 바 있다. 이처럼 까다로운 용접 및 가공 이력을 보유하고 있기에 SMR 시장에서도 충분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육상 SMR뿐 아니라 해상 SMR 발전소, SMR 추진선 등 기존 사업과 연계한 다양한 형태의 사업 확장을 검토하고 있다.”
- 끝으로 강조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엔지니어링의 본질은 ‘융합’이다. 다양한 요소 기술을 엮어 최적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핵심이다. 앞으로 설계·해석·공정 엔지니어링 전 분야에서 유럽의 글로벌 엔지니어링사와 당당히 경쟁할 수 있는 수준까지 기술력을 더 끌어올리려 한다. 또 향후 제조 경쟁력의 핵심은 AI·자동화·디지털 기반 생산이다. AX 전환을 위한 기술개발을 위해 산학협력을 더욱 강화해 나가겠다.”
울산=구현화 한경ESG 기자 ku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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