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춘실 성데레사진료소 소장(59·사진)은 2007년 아프리카 말라위의 음탱고완탱가병원 책임자로 파견됐다. 음탱고완탱가는 현지어로 ‘새들의 깃털로 덮인 나무’라는 뜻이다. 말 그대로 깃털 같은 생명들이 간신히 삶의 문턱에 걸려 있는 지역이었다. 연료가 부족해 병원 설비 가동조차 쉽지 않았다. 연료를 구하러 주유소를 돌아다니는 게 정 진료소장의 주요 업무 중 하나일 정도로 상황이 열악했다.그런 지역에 몸무게 600g 미숙아가 태어났다. 미숙아의 생명줄인 인큐베이터를 가동하기 위해 연료를 아낌없이 썼다. 하루에도 몇 번씩 몸무게를 점검하며 모두가 노력한 끝에 아이는 무사히 퇴원할 수 있었다. 정 진료소장은 “생명의 경이를 느낀 순간이었다”며 “그 아이의 이름을 ‘기적’이라고 지었다”고 했다. 그는 25년 동안 아프리카에서 약 80만 명에게 의료 봉사를 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5일 아산사회복지재단이 선정한 제37회 아산상을 수상했다.
정 진료소장은 어릴 때부터 매일 선행을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유년기에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게 드리는 ‘하루 한 번의 선물’이라고 믿어서다. 청소년기에는 ‘한 번 사는 인생, 후회 없이 아름답게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다미안 드 베스테르 성인이 평생 한센인에게 헌신한 삶에 영향을 받아 1995년 수녀로 종신서원을 했고 영국에서 간호학을 전공했다. 간호사 자격을 취득한 이듬해인 2000년 아프리카에서 의료봉사를 시작했다.
정 진료소장은 2003년 케냐 수도 나이로비의 외곽 지역인 키텐겔라에서 성데레사진료소 설립을 주도했다. 현지 병원 진료비를 감당하지 못한 환자들이 진료소로 몰리던 시절, 의료인 부족을 해결할 몇 가지 길이 열렸다. 그 가운데 하나가 현지 인력 양성이었다. 갑자기 부모를 잃어 진학이 어려워지면서 진료소에서 청소부로 일하던 현지 청년이 있었다. 그는 “청소를 다 끝낸 청년에게 의료 책을 건넸는데, 한 달 만에 다 이해했다”며 “그 청년은 지금 진료소에서 임상병리사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역시 경제적 문제로 학업을 포기했던 다른 청년도 지원을 받아 의사로 성장했다. 이렇게 의료인이 된 현지인들이 진료소를 든든히 뒷받침하고 있다.
정 진료소장은 “내가 건강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에이즈 환자가 많아 혈액 확보가 힘든 상황이라 그를 비롯한 의료진이 적극적으로 헌혈을 해야 해서다. 한번은 수혈을 거부하는 부모를 설득해 아이에게 정 진료소장이 직접 헌혈해 살린 적이 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빈혈이 씻은 듯 나은 놀라운 경험을 했다고 했다. 무리해서 헌혈하다가 실신한 적도 있었다. 그는 “이 경험 뒤 무서울 게 없어졌고, 더 많은 사람을 살리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에게 최근 찾아온 행운이자 기적은 아산상이다. 나이로비 외곽 칸고야 농촌지역에 새로운 진료소를 세우고 있는데, 자금 부족으로 공사를 마무리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정 진료소장은 “아산상 상금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 곧 진료소를 열 수 있게 됐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는 매일 새벽 3시30분에 일어나 기도로 하루를 열고 바쁘게 시간을 보낸다. “힘들고 피곤할 시간조차 없다”는 정 진료소장은 “매일을 정성껏, 후회 없이 살자는 좌우명을 계속 지키겠다”고 말했다.
이고운/사진=김범준 기자 cca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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