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말 시작된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 통폐합 논의와 관련해 업계에선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나프타분해설비(NCC) 생산량 1위(국내외 총합)인 롯데케미칼이 규모가 훨씬 작은 HD현대케미칼에 공장 경영권 전반을 넘겨줄 가능성이 높지 않아서다. 양사가 26일 합의한 ‘대산 NCC 빅딜’이 석유화학 구조조정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진 이유다.
양사 통합 논의가 속도를 낸 것은 지난 8월 정부의 ‘석유화학산업 구조 개편 로드맵’이 나온 뒤부터다. 하지만 정부의 구조조정 방침에도 불구하고 전남 여수와 울산 지역의 구조조정은 아직 진척이 더딘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이날 여수 국가산업단지를 찾아 NCC 기업들에 “(구조조정) 속도를 내지 못하면 정부 지원은 없으며 각자도생해야 할 것”이라고 재차 경고했다.
김 장관은 석화 구조조정 ‘1호 빅딜’ 소식이 나온 이날 여수에 내려가 NCC 기업들을 만났다. 여수 산단은 아직 감산 합의 초안도 산업부에 제시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는 석화산업 구조조정의 성공 여부가 여수 지역의 설비 감축에 달려 있다고 입을 모은다. 여수 지역의 NCC 생산능력은 총 641만t으로 전체 국내 생산량(1295만t)의 절반가량을 차지한다. 국내 석화 구조조정 컨설팅을 수행한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여수에서 최소 150만t(24%) 감축이 이뤄져야 한다고 권고했다.
김 장관은 이날 여수 NCC 기업들을 만나 “12월 말 데드라인을 넘기면 기한 연장은 절대 없으며, 기회를 놓친 기업은 정책 지원도 없다”고 강조했다. 세제 혜택, 금융 지원 등 ‘인센티브 패키지’를 구조조정에 동참한 기업에 몰아주겠다는 최후통첩으로 간주됐다.정부는 여천NCC(228만5000t)와 LG화학(200만t)의 감산이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여수 지역엔 NCC 원료를 공급하는 정유사와 NCC 후방 공정을 담당하는 기업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감축 방안을 놓고 NCC 기업 간 이해관계를 조정하기가 쉽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LG화학과 GS칼텍스는 NCC 물밑으로 통합 논의를 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감축 방식을 놓고 입장차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LG화학은 고부가가치 중심의 수직계열화를 위한 조(兆) 단위 연계 투자를 단행해 NCC를 줄이기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GS칼텍스는 2조7000억원을 들여 2022년 준공한 공장의 설비를 감축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GS칼텍스의 NCC 공장은 지분 50%를 보유한 미국 셰브런과도 합의해야 한다. 여천NCC는 공동 대주주인 한화와 DL이 자금 지원과 원재료 공급 조건을 놓고 이견을 보이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여수지역에 대해 “모든 기업이 설비 감축 필요성엔 동의하지만, 손해를 조금이라도 덜 보기 위해 기 싸움을 하고 있는 단계”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정부는 기업들이 자율 구조조정에 합의하면 전폭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날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 간 기업결합 사전심사에 들어갔다. 가능한 한 심사를 신속하게 끝낸다는 입장이다. 산업부도 기업활력법에 따른 세제 혜택 등이 포함된 ‘맞춤형 지원 패키지’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김대훈/하지은/성상훈 기자 daepun@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