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티파니가 오랜 세월 빛날 수 있었던 것은 찬란히 쌓인 역사와 그 역사를 써 내려간 다양한 인물들 덕분이다.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아레나광장에서 진행 중인 전시 ‘With Love, Seoul’는 티파니의 영광을 만든 세 명의 주역을 소개한다. 창립자 찰스 루이스 티파니(Charles Lewis Tiffany)와 그의 아들이자 티파니의 초대 아트 디렉터 루이스 컴포트 티파니(Louis Comfort Tiffany), 그리고 하우스의 전설적인 디자이너 잔 슐럼버제(Jean Schlumberger)가 남긴 유산을 조명하는 자리다.

그의 수완이 돋보이는 일화는 또 있다. 티파니 매장 앞은 늘 사람들로 북적였다. 매장 입구 중앙에 있는 시계를 통해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당시 시계는 고가의 사치품으로, 주로 상류층만이 소유할 수 있었다. 따라서 교회나 광장 등 시계가 있는 곳에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공공장소의 역할을 했다. 찰스 티파니는 이에서 착안해 1853년 뉴욕 매장 정면에 신화 속 아틀라스가 하늘 대신 시계를 짊어지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조형물을 설치했다. 높이 약 3m의 이 시계는 아직까지도 뉴욕 5번가 플래그십 스토어를 지키며 브랜드를 상징하는 이미지이자 랜드마크로 자리잡고 있다.

전시는 뉴욕의 아틀라스 시계를 그대로 한국에 옮겨놓은 ‘Love of Legacy’ 공간에서 시작된다. 총 4개의 테마와 이를 확장한 6개의 공간으로 들어서는 출발점이다. 아틀라스 시계상을 중심으로 양쪽에 날개가 달린 듯 45도 각도로 관람객을 향해 펼쳐진 화면에서 티파니의 정체성을 형성해온 순간들이 연도별로 상영된다. 이 영상은 천장과 바닥의 대리석에도 반사되며 넓은 공간감을 선사하고, 마치 그 순간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몰입감을 준다. 이윽고 마주하게 되는 공간은 찰스 티파니가 1837년 문 연 뉴욕의 상점을 재현한 ‘Love of Creativity’.

이 챕터는 인물별로 그들이 남긴 기념비적인 하이 주얼리와 그에 어울리는 분위기로 조성했다. 가장 먼저 관람객을 반기는 것은 에메랄드 네크리스다. 스페인 여왕 이사벨 2세가 사용하던 것으로, 깊은 녹색의 에메랄드가 이사벨 여왕이 속했던 부르봉(Bourbon) 왕가를 상징하는 플뢰르 드 리스(fleur-de-lis) 모티프(왕가를 상징하는 문양)와 번갈아 배치돼 있다.
찰스 티파니는 19세기 초 프랑스의 루이 필리프 정권이 몰락하며 정치적으로 혼란했던 시기, 귀족들이 판매하는 다이아몬드에서 기회를 엿봤다. 신생 기업이었지만 위험을 감수하고 첫 다이아몬드 대규모 거래를 성사했고, 이후 언론은 그를 ‘다이아몬드의 왕(King of Diamonds)’이라 칭하며 서서히 미국 럭셔리를 상징하는 이미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를 기반으로 19세기 후반에는 유럽 왕실의 주얼리를 적극적으로 수집했다.


티파니하면 연상되는 티파니 블루 박스의 첫번째 모델과 티파니 세팅 인게이지먼트 링도 관람객을 반긴 다. 1886년 찰스 티파니는 혁신적인 반지 세팅 기법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전까지 다이아몬드 반지는 보석을 금속으로 전체적으로 감싸는 베젤 세팅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티파니는 다이아몬드를 최대한 눈부시게 빛나도록 밴드 위로 높이 들어 올려 세팅한 반지를 선보이고, ‘티파니 세팅’이라 이름 붙였다. 이 방식이 오늘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약혼반지의 모습이다.
여전히 굳건한 파트너십을 이어오고 있는 스위스의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 파텍 필립과 만든 초기의 포켓 워치와 겉으로 보기에는 장식품이지만 뒷면에는 시계를 달아 당시 공식적인 자리에서 시계를 보는 것이 어려웠던 여성들을 위한 샤틀렌 워치도 함께 전시된다.



그는 새로운 도전에도 시동을 걸었다. 아트 디렉터로 임명된 그는 1907년 뉴욕 37번가 플래그십 스토어 6층에 아트 주얼리 부서를 설립하고 줄리아 먼슨, 메타 오버벡과 같은 뛰어난 여성 아티스트를 영입했다. 이들은 스틱핀과 브로치에서부터 정교한 네크리스와 헤어 오너먼트에 이르기까지 예술성과 장인정신이 결합된 작품들을 선보였다. 루이스 티파니를 소개하는 공간은 천장을 스테인글라스로 장식해 색채와 형태를 다루는 그의 감각을 효과적으로 소개한다.
루이스 티파니와 그의 팀이 추구하는 미학은 펜던트 중앙을 수퍼 사파이어로 세팅한 네크리스에서 극대화된다. 희소성이 높은 사파이어 중에서도 높은 품질의 수퍼 사파이어는 빛의 움직임에 따라 반짝이는 별처럼 일렁이며 빛난다. 스테인드글라스 창과 램프를 통해 탐구한 루이스 티파니의 예술적 개념을 주얼리로 확장한 것이다. 이 공간에서는 블루 문스톤이나 따뜻한 오렌지 컬러의 시트린 등 빛을 통한 컬러감이 돋보이는 유색 보석의 아름다움이 강조된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그려 온 슐럼버제의 모든 주얼리는 스케치에서 출발한다. 정규 미술 교육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여행을 사랑한 그는 발리, 인도, 태국 등지에서 마주한 모든 생명의 경이로움을 보석으로 옮겨 재탄생시켰다. 이번 전시에는 그가 남긴 스케치와 이를 기반으로 태어난 주얼리가 한데 모여있어 주얼리의 시작부터 끝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자연을 향한 그의 찬사는 92캐럿의 핑크 사파이어와 블루 사파이어, 다이아몬드로 세팅한 주얼리에서 그 정점을 찍는다. 중앙의 핑크 사파이어를 둘러싼 나뭇가지 형상의 구조는 생동감이 넘친다. 1956년 피오나 티센-보르네미자 남작 부인으로부터 의뢰 받아 제작한 이 브로치는 슐럼버제의 뉴욕 전시 개막식에 부인이 실제로 착용하고 등장해 수집가와 경매 시장을 떠들썩하게 만들기도 했다.

티파니의 대표적 하이 주얼리 중 하나인 ‘버드 온 락(Bird on Rock)’ 역시 그가 빚어낸 걸작 중 하나. 사각의 유색 보석 위 사뿐히 내려앉은 새 한 마리는 슐럼버제가 카리브 해안에서 만난 왕관 앵무새를 옮겨다 놓았다. 바위 위에 앉아 있는 앵무새에게 영감 받은 그는 그의 오랜 친구이자 평생의 후원가 버니 멜론(Rachel Bunny Mellon)의 별장에서 스케치를 완성한다. 슐럼버제는 미국 버지니아 주 오크 스프링스에 자리잡은 이 별장을 무척 사랑했다. 많은 디자인의 스케치를 이곳에서 완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이 있는 전시장은 천장과 벽면을 열매와 덩굴 등 자연의 소재로 조각한 인테리어로 꾸며 그의 예술적 시선을 자연스럽게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슐럼버제의 작품에서는 완벽한 대칭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는 고르지 않고 유기적인 자연의 형태와 우주의 불규칙함을 표현하고자 했다. 불완전해서 더 아름다운 자연의 이치를 담고자 한 것이다. 뉴욕 사교계 인사이자 아트 컬렉터였던 마르타 레이몬드(Marta E. de Cedercrantz Raymond)의 의뢰로 제작한 윙즈 클립은 그의 예술 정신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양 날개 중앙의 위치한 두 개의 사파이어는 수평을 이루지 않고 미묘하게 틀어져 있다. 완벽한 대칭보다는 예술적 균형을 더 중시한 슐럼버제의 디자인 철학을 보여주는 대표적 예시다. 마르타는 이 클립을 보고 화려한 코끼리 얼굴을, 누군가는 슐럼버제가 독실한 기독교 가문이라는 점에서 예수님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다양한 관점과 창의력을 이끌어내는 힘이 있는 작품이다.

슐럼버제의 상상을 거치면 불가사리는 별이 되고, 꽃은 태양이, 새의 깃털은 천사의 날개가 된다. 바다속을 분위기를 연출한 ‘Love of Design’ 챕터에서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시적으로 표현한 그의 디자인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말미잘과 문어, 소라, 해마 등 해양생물을 모티브로 한 주얼리를 비롯해 독창적인 그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티파니 주얼리의 전반적인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의 클립. 창과 방패, 갑옷 형태의 이 클립은 패션지 ‘보그’의 전설적인 편집장 다이애나 브릴랜드(Diana Vreeland)를 위해 만든 것이다. ‘트로페드 발리안스(Trophee de Vaillance)’라는 이름의 이 클립은 불어로 ‘용맹의 트로피’라는 의미다. 다이애나는 이 클립을 브로치로 사용했을뿐 아니라, 체인에 매달아 네크리스 형태로 착용하기도 했다. 여행을 다닐 때도 늘 소지했으며, 한 인터뷰에서는 늘 침실 머리 맡에 두고 잔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는 주얼리 외에도 1960~1980년대 신문 광고와 캠페인, 현대 아티스트 크리스타 킴(Krista Kim)이 티파니의 유산에 경의를 표하며 제작한 디지털 설치 작품도 함께 선보인다. 전시는 12월 14일까지, 관람료는 무료.
강은영 기자 qboo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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