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잠에서 깨어난 시간부터 지금까지, 두 눈으로 무엇을 보았는지 한번 떠올려보자. 흩날리는 낙엽, 깜빡이는 신호등, 엘리베이터의 닫힘 버튼, 편의점과 카페의 간판들…. 우리가 스치듯 매일 ‘본 것’들은 좀처럼 의식에 기록되지 않는다. 주의를 끌지도 않는다.
여러 번 본 것을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무언가를 배웠으되, 동시에 배우지 않는 법을 배워 ‘순진한 눈’을 가진 자들. 그래서 세상을 남과 다른 눈으로 치열하게 바라보는 일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 우리는 이런 이들을 예술가라고 부른다.
<미술관에서 우리가 놓친 것들>은 예술가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31가지 방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전 영국 테이트 갤러리 관장이자 BBC 예술 담당 기자로 활약했던 미술평론가 윌 곰퍼츠가 썼다. 10년 전 출간한 <발칙한 현대미술사>와 <발칙한 예술가들>에 이은 세 번째 책이다.

데이비드 호크니의 ‘봄의 도래, 이스트 요크셔 월드게이트’(2011)에서 책은 시작한다. 보라색, 붉은색 몸통을 가진 나무와 어느 하나 같지 않은 초록과 노랑의 나뭇잎이 펼쳐진 무지갯빛 숲 그림이다. 이 지역에서 북해의 칼바람을 마주해본 사람이라면, 놀랄 일이다. 그럴 때 호크니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제대로 보지 않았습니다. 대충 볼 뿐입니다. 무언가를 더 오래 살펴보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될 겁니다.”
호크니와의 대화를 나눈 뒤 저자는 집 근처 숲에서 환각적 색채들을 발견한다. 마치 호크니의 그림에 정신을 빼앗긴 것처럼. ‘풍경화가 더 이상 새롭지 않다는 생각은, 풍경이 따분한 것이 아니라 풍경을 묘사하는 방식이 지루해져서다’라고 말한 1960년대 호크니의 세계관은 80대가 된 지금까지 반세기 넘게 이어지고 있다. 찰나의 평범한 순간을 기록하고, 아이패드로도 활기가 충만한 그림을 그린다.
고통을 예술로 승화한 예술가로는 프리다 칼로와 쿠사마 야요이가 등장한다. 가장 사적인 공간을 전시해 비밀스러운 감정을 세상에 드러낸 트레이시 에민, 보헤미안과 중독자가 들끓는 뉴욕 언더그라운드의 장 미셸 바스키아, 얼굴이 아닌 내면을 바라봤던 렘브란트까지 시대를 넘나들며 예술가들의 관점을 탐험한다.
근현대 미술사 명작들을 사회적 배경과 통시적으로 엮어낸 전작과 비교하면 미시사에 가깝다. 미술계의 화제작과 현대미술에 어느 정도 배경 지식이 있는 독자라면 반길만 하다. 하지만 '제대로 보는 법'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예술가들의 삶과 생각을 이상적인 것처럼 묘사한 부분은 다소 아쉽다. 저자의 뜻처럼 예술은 결국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세계를 읽는 도구로서 다뤄져야 한다면, 예술가적 시선만이 정답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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