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녁 식탁은 정치적 공간이다. 누구와 어떤 음식을 어느 시간대에 먹으며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가 당신의 계급을 드러낸다. 퇴근 시간과 연봉, 가족 관계와 최근 관심사 같은 삶의 조건들이 식탁의 차림새를 결정한다. 식탁은 계급의 결과뿐 아니라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저녁 식탁은 가족문화의 결정체로, 자녀의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

최근 출간된 <성공하는 가족의 저녁 식탁>은 부제처럼 '아이의 탁월함을 발견하고 길러내는 가족문화의 비밀'을 탐구하는 책이다. "왜 의사 집안에서 의사, 교수 집안에서 교수가 나올까?" "그 집에는 대체 무슨 특별함이 있을까?" 하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2018년 퓰리처상을 받은 저널리스트 수전 도미너스. 예일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예일대 로스쿨에서 법학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1995년부터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주로 '뉴욕타임스'에 글을 실었다. 현재는 예일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명쾌한 '성공 방정식'을 짚어주는 책은 아니다. 책은 문화적·사회적·경제적 배경이 각기 다른 여섯 가족을 들여다 본다. 다양한 가족문화 사례를 통해 부모의 어떤 행동과 태도, 형제 간 어떤 역학이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예컨대 의사 제리 그로프의 세 자녀는 각각 의사이자 사업가, 유명 소설가, 트라이애슬론 올림픽 출전 선수 출신 임상심리학 연구자다. 이들의 성취를 공통적으로 설명하는 키워드는 '지구력'인데, 아버지인 의사 제리 그로프는 자녀를 칭찬할 때 재능이 있다는 말 대신에 '강인하다'는 표현을 즐겨 쓴다. 14㎞에 달하는 집 근처 호수를 수영으로 건너고 싶다는 막내딸을 만류하는 대신에 그녀가 수영하는 동안 보트를 타고 그 옆을 따라간다.
'애초에 유전자가 뛰어난 집안 아니냐'는 반박을 예상한 듯 저자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쌍둥이 사례, 최근 유전학 연구 등도 포함시켰다.
책을 읽다 보면 자녀, 나아가 스스로에게 기대하는 '성공'이란 무엇인지 묻게 된다. 저자는 서문을 통해 "이 책은 명성과 성공의 본질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쌍둥이 형제의 엄마로서 그는 성공을 학업 성취나 경제적 우위 이상의 의미로 사용한다. "우리는 아이들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아이들에게 선택지가 있기를 바란다. 아이들이 어떤 경지에 오르는 짜릿함을 느끼길 바란다." 자녀를 부모의 설계대로 성장시킬 수 있다고 믿는 오만은 경계하려 한다. 그는 아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친 경험을 예시로 들며 "리오 앞에 피아노를 놓은 것은 우리 부부다. 그러나 그 피아노를 어떻게 연주할지는 오직 리오만이 결정할 수 있다"고 썼다.
다만 '성공'의 개념을 다각도로 조명하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와 달리 책에서 언급하는 '성공한 가족'은 직업 등 가시적인 조건 위주로 서술돼 있다. 주관적 행복도나 삶에 대한 만족감은 타인이 증명하기 까다롭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이들의 가족문화를 역추적하다 보니 그들이 경험한 훈육을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오류도 더러 저지른다. 딸의 리포트에 빨간펜으로 고칠 점을 빼곡하게 적어 돌려준 어머니의 모습을 두고 "기대치가 높았지만 과제를 다시 쓰라고 강요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하는 식이다.
국내판 제목은 탁월하게 매력적이나 책 내용이 저녁 식탁 문화에 집중할 거라는 오해를 부른다. 제목의 '저녁 식탁'은 하나의 상징일 뿐, 본문은 가족문화 전반을 폭넓게 다룬다. 원제는 'The Family Dynamic'.
한국 제목은 저자의 어린 시절 경험에서 따왔다.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도미너스는 부모님이 출장으로 집을 비우는 2주간 친한 친구의 집에 맡겨진다. 식사를 허겁지겁 해치운 뒤 TV 시트콤을 봤던 도미너스의 가족들과 달리, 친구의 가족들은 천천히 식사를 마친 뒤 특정 사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거나 아버지가 즉석에서 만든 수학문제를 풀었다. 도미너스는 자라면서 친구 가족의 식탁을 되새기며 자신의 다른 가능성을 곱씹곤 했다고 고백한다. "나는 수학이 어려웠다. 하지만 내가 매일 저녁 식탁에서 수학문제를 풀었다면? (…) 그랬다면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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