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1일 오후 2시께 서울의 한 대학교의 경영학관 강의실. 법 관련 수업을 듣는 약 70명의 수강생 중 상당수가 노트북과 태블릿을 펼쳐둔 채 강의와 무관한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휴대전화로 녹음 버튼만 눌러둔 뒤 다른 수업 과제를 하거나 인터넷 쇼핑을 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AI(인공지능) 기반 학습 도구의 확산으로 대학 강의실의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강의 음성만 녹음하면 AI가 요약본·정리 노트·예상문제까지 만들어주는 시대가 열리자, 학생들은 더 이상 수업을 직접 듣고 필기하는 데 시간을 들이지 않기 시작했다. 강의실에 출석하지 않고 녹음본만 구매해 AI로 학습하는 행태까지 나타나면서 대면수업의 의미가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클로바노트와 다글로는 영상·음성 파일을 텍스트로 변환하고 핵심 내용을 요약해주는 AI 기반 앱이다. 대학생들은 강의 내내 앱 녹음 기능을 켜두거나 녹음 파일을 업로드해 AI가 ‘대신 수업을 듣도록’ 활용한다. 다글로는 강의 자료를 넣으면 예상문제와 정답까지 자동 생성하는 ‘AI 퀴즈’ 기능도 갖추고 있다. 지난달 기준 클로바노트와 다글로의 20대 사용자 비중은 각 35%·30%였다.
이용 패턴도 학기 중에 집중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클로바노트의 20대 MAU는 학기 중(3~6월·9~10월) 평균 24만2253명으로, 방학 기간(1~2월·7~8월) 평균 18만6063명보다 많았다. 다글로 역시 학기 중 20대 MAU가 평균 8만6788명으로 방학 중(4만2090명)의 두 배를 웃돌았다.
AI 의존도는 공학·자연과학처럼 이해 중심 과목보다 암기 비중이 큰 문과·교양 수업에서 두드러진다는 분석이 나온다. 성균관대 공대 재학생 안모 씨(23)는 “전공은 문제를 푸는 과정이나 개념 간 연결을 이해해야 해서 강의에 집중하는 게 중요하지만 교양 수업은 그렇지 않다"며 "암기 위주 과목은 녹음만 해두고 AI에 돌리면 핵심 내용이 한 번에 정리돼 굳이 꼼꼼히 들을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말했다.
일부 학생들은 강의실에 발을 들이지 않고도 녹음 파일만 확보해 AI 학습에 활용하고 있다. 대학생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는 “△△강의 녹음본 구함”, “지난주 녹음본 팔아요” 같은 게시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과거에는 시험 대비를 위해 ‘족보’를 사고팔았다면, 이제는 수업 전체를 녹음한 파일이 거래 대상이 된 것이다.이에 일부 교수들은 무단 녹음 자체를 엄격히 금지하고 나섰다. 연세대 경제학과에서 게임이론 강의를 맡고 있는 한 교수는 강의계획서에 “강의 녹음본을 타인에게 판매하거나 전송할 경우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명시했다.
교육계에서는 AI가 가져온 변화가 단순한 편의성을 넘어 대학 수업의 본질적 기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서울의 한 4년제 대학 교무처장 역시 “AI로 인해 현장 수업 참여가 약해지면 교수와 학생의 소통이 단절돼 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며 “학습 방식이 비대면·자율학습 중심으로 굳어지면서 학생 간 교류도 줄어 사회성 저하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학가에 AI 활용 수업을 접목시키는 과정에서 과도기에 있다고 진단했다. 서울대 등 서울 시내 주요 대학도 AI가이드라인 마련을 논의 중인 단계다. 김명주 인공지능안전연구소(서울여대 정보보호학과 교수) 소장은 “대학 수업 중 AI 도구 활용을 어디까지 허용할지에 대한 학내 가이드라인을 수립해야 한다"며 "구성원 간 공론장을 마련해 충분한 협의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김영리/김다빈/김유진 기자 smart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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