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급히 놋수저 세 개와 콩이 담긴 밥그릇을 챙겨 산으로 향한다. 그러나 아이는 자신이 평생 살아왔던 이 세상보다도 더 큰 산 앞에서 망연자실한다. 어디로, 언제까지 올라가야 하는 것인가. 저 거대한 산에서 몇 밤을 자고, 몇 끼를 버텨야 엄마를 만날 수 있는 걸까.

지난 26일에 개봉한 한국 영화, <한란> (하명미)은 1948년 제주를 배경으로 군인들의 학살을 피하기 위해 산으로 오르는 모녀, 아진(김향기)과 해생(김민채)의 험난한 여정을 그리는 영화다. 영화는 아진이 토벌대를 피해, 그리고 산으로 먼저 올라간 남편을 만나기 위해 한라산으로 피신하면서 어린 딸과 잠시 이별을 해야 하는 순간으로부터 시작된다. 아진은 내키지 않는 마음을 뒤로한 채 산에 오르던 중 군인들이 마을 사람들을 모두 학살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딸을 찾아 발걸음을 돌린다.

해생 역시 학살로 할머니를 잃은 후, 집을 태우기 위해 마을 곳곳을 헤집고 다니는 군인들의 눈을 피해 엄마를 찾아 떠난다. 멀고도 아득한 한라산의 어딘가에서 두 모녀는 끝도 없는 죽음의 문턱을 넘어 마침내 재회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남은 것은 둘이 함께 넘어야 할 또 다른 죽음의 문턱뿐이다. 총알인지 눈인지도 구별이 되지 않는 설산의 한 가운데에서 두 모녀는 군인들 그리고 대자연의 전장을 뚫고 바다로 향한다. 모녀를 먹이고, 품어 줄 유일한 곳. 제주의 핏줄이자 4.3의 비극이 초래한 눈물이 모인 그곳.
<한란>은 오멸 감독의 <지슬> 이후, 무려 12년이 흐른 지금 공개되는 제주 4.3 영화다. 영화는 <지슬>이 그랬던 것처럼, 1948년을 배경으로, 그리고 헤안선 5킬로미터를 벗어나거나, 산으로 올라가고 내려오는 사람들을 군인과 경찰들이 무차별 학살했던 당시의 참혹한 사건들을 그린다. 다만 주목할 것은 <한란>의 주인공은 어린 엄마와 6살 여자아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영화는 양민 학살이라는 엄청난 사건의 피해자 집단 중에서도 가장 최약체를 영화의 주인공으로 선택한 것이다. 영화는 그렇기에 모녀가 헤어지고 재회하는 순간, 그리고 죽음과 삶의 기로에 서는 순간마다 더 큰 안타까움과 동정심을 갖게 한다.

물론 슬픔과 동정이 이 영화가 목표하는, 혹은 전제하는 감정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한란>은 가장 유약하면서도 공격에 취약한 인물들을 메인 화자(話者)로 함으로써, 동시에 이들이 체제의 변화와 국가 폭력의 최전선의 피해자가 되는 과정을 그림으로써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극악무도한 순간을 조명한다.
영화의 중반에서 아진은 마침내 해생을 찾아내고, 친구이자 애기 신방(무당)이 있는 동굴로 피신하기로 한다. 동굴로 올라가는 길에 모녀는 백기를 들고 내려오는 마을 사람들과 마주친다. 노인과 여성만 남은 이들은 항복하고 내려오는 사람들을 살려주겠다는 ‘삐라’를 믿고 마을로 내려가기로 한 것이다. 아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웃의 어른은 굶어 죽느니 집으로 가겠다며 하산을 강행한다. 이들은 아진에게 남은 음식과 우장 (풀로 만든 우의)을 건넨다. 무리 중 한 명은 해생이 입을 우장이 없는 것을 보고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풀로 우장을 만들기 시작한다. 남은 이웃들이 모두 풀 주변으로 모여들고, 해생의 작은 우장이 만들어진다.
노인과 할머니들이 둘러앉아 우장을 만드는 이 장면은 아마 <한란>이 보여주는 수많은 애처로운, 그럼에도 따뜻한 순간 중 하나일 것이다. 동시에 우장 시퀀스는 <한란>의 가장 상징적인 순간이기도 하다. 아진과 해생처럼, 영화가 비추는 이웃은 모두 약자들뿐이다. 궁극적으로 영화는 제주 4.3에서 어쩌면 가장 먼저 희생되었을 나약한 존재들에게 가장 강력한 목소리와 가슴 어린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실제 그들에게는 주어지지도 못했을.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한란>은 분명 고통스럽고 아픈 영화지만 그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눈부신 영화라는 사실이다. 아진과 해생이 재회하고 난 이후의 여정 역시 험난하고 참혹하기 이를 데 없지만, 이들은 그럼에도 외롭지 않았을 것이다. 제주의 이웃들이 늘 함께 생사를 했던 것처럼, 아이는 엄마의 손을 잡고 바다로 뛰어드는 순간까지도 두렵지 않았을 것이다.
이 영화를 만든 창작자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분명 <한란>이 그리는 역사를 마주하는 과정, 그리고 그것을 영화로 옮기는 과정이 고통스럽고 가슴 아픈 순간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이제 그 마음과 노력을 헤아려 주고 싶다. 작지만 큰 영화 <한란>의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영화의 목표와 이상이 반드시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바라는 바이다.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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