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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떼 칼럼] 끝나지 않은 마음, 내 인생 어딘가에

입력 2025-11-28 17:28   수정 2025-11-29 00:09

보험사에서 보내온 선물 상자가 며칠째 문밖에 놓여 있다. 청약을 철회한 마당에 집안으로 들일 수가 없다. 현관문을 여닫을 때마다 마치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아서 불편하다. 길 잃은 상자를 어서 우체국으로 들고 가야겠다.

나이가 들면서 명확하게 정리하는 습관 같은 게 생겼다. 마음속에서는 끝났지만 실제로는 끝나지 않는 일이 많기 때문에 사소한 것들까지 꼬박꼬박 메모하고 결론을 내린다. 예전처럼 ‘어떻게든 해결되겠지’라고 외면해 버릴 배짱도 없다. 그런데 이게 꼭 좋은 방식인지 모르겠다. 어떤 책에서는 인생이란 원래 해결되지 못한 채 지나가는 시간이라고 했고, 또 누군가는 설명되지 않는 일들을 받아들이며 사는 것이라고 했다.

‘가로등이 켜질 때(When the Streetlights Go On)’라는 미국 드라마가 있다. 어느 작은 교외 마을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이후 마을에 찾아온 혼란과 트라우마가 주된 이야기다. 외피는 스릴러물이지만 피해자의 여동생과 친구들이 각자의 상실감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가는 모습은 성장드라마에 가깝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까, 들떠 있는 십대들의 파티에는 늘 기묘한 불안감이 붙어 다닌다. 첫사랑은 이뤄지지 못하고 끔찍했던 사건도 해결되지 못한 채 시간이 흐른다. 그때 열여섯 살이던 남주인공이 성인이 되어 마을로 돌아왔을 때,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그곳에는 또 다른 생기가 넘친다. 그의 마지막 내레이션은 이렇다. “살인이 일어났던 숲은 산불로 전부 타버렸다. 시간이 지나 숲은 다시 자라고 이상하게도 예전보다 더 울창하고 생명력이 넘치며, 길들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의 남자친구가 LP 레코드를 선물하는 장면이 있다. 1960년대에 비틀스만큼이나 인기 있던 비치보이스의 앨범이다. 나는 작가가 정말 대단하다고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비치보이스는 미스터리한 작곡법을 사용한 밴드였기 때문이다. 명쾌하게 마침표를 찍지 않고 노래를 끝낸다거나 앞부분의 감정을 해결하지 않은 채 여운을 남기는 방식이다. 그런 이유로 비치보이스를 등장시킨 거라면 ‘가로등이 켜질 때’의 세계관과 너무나 잘 맞는다.

음악에서 해결하지 않는 감정이란 무엇일까? 쉽게 말해 원래의 자리로 떨어져야 할 음을 잠시 붙잡아 두는 방법이다. 재즈에서는 오래전부터 이런 미완의 감정을 다루는 화성이 중요한 미학이다. 보통 노래들은 긴장에서 안정으로, 떠 있는 느낌에서 착지하는 느낌으로 움직인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할 음이 있고 그 자리에 돌아오면 해소된 느낌이 생긴다. 예를 들어 생일 축하 노래를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이쯤에서 끝낼 수는 없는 것이다. 아직 노래가 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악에도 중력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중력을 무시한다면 어떻게 될까? 듣는 사람은 끝날 것 같지만 끝나지 않는 느낌을 받는다. 사랑 고백을 할 것 같다가 말을 삼키는 순간 같은 거랄까, 이런 식의 해소되지 않는 감정은 어떤 기대와 미련, 기다림으로 남는다. 노래가 끝나도 감정은 그대로다. 에리히 프롬은 “불확실성 속에서 의미를 찾아가는 것이 삶의 역동성”이라고 했다. 대부분은 이해되지 않아도, 설명되지 않아도 그냥 살아간다. 끝까지 말하지 못한 감정, 괜히 멀어진 친구, 궁금하지만 연락할 수 없는 사람, 부모님께 하지 못한 말, 그때는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지금도 설명할 수 없는 일들.

문밖에 택배 상자가 그대로 있다. 해결되지 않은 일들은 그렇게 어딘가에 남는다. 아직 정리되지 못한 내 마음이 상자 속에 들어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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