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승진한 분들은 기쁘겠지만, 모두가 임원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화제의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는 대기업 부장인 50대 남성이 조직 내 생존 경쟁에서 밀려 퇴직하면서 겪는 위기를 그려 중장년층의 공감을 얻고 있다. 김부장이 그토록 되고 싶었던 ‘상무’. 만일 상무가 되었더라도 임원(‘임시직원’의 줄임말)인 김상무에게 언젠가는 계약 해지가 다가올텐데, 퇴직 후 그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대기업 상무로 퇴직한 한 임원이 퇴직 후의 삶을 고민하고 있었다. 코칭을 시작하면서 “어떻게 불러드리면 좋을까요?”라고 물었는데, ‘김○○ 상무’로 불러 달라고 답한다. 순간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마땅히 소개할 단어가 생각나지 않을 수 있지’라는 생각과 함께 ‘아직 과거에 머물러 있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드라마 ‘김부장’에서는 이를 ‘자존심’이라고 칭했고, 주인공 김부장 역시 그 자존심을 내려 놓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였다. 회사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는 순간, 더 이상 부장 대접을 받기는 어렵다. 빨리 자연인 모드로 전환해야 하며, 퇴직 후 김부장이 ‘세차’를 하는 것처럼 직업이 여러 번 바뀔 수도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부장이나 임원까지 올라가면서 쌓은 전문성을 퇴직 후에도 자신의 브랜드로 승화시킬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그렇지 못하다. 내가 코칭한 임원 역시 회사에 충성하다 예고도 없이 퇴직하게 된 터라, 정작 퇴직 후의 삶에 대한 준비가 없었다.
실제로 많은 직장인들이 직장을 떠나는 순간 멘탈이 붕괴된다. 휴대폰에 저장된 연락처는 많지만 정작 연락할 사람은 없다. 세상은 춥고, 할 일은 없고, 불러주는 데도 없다. ‘직업’을 만들어 놓지 않고 ‘직장’만 열심히 다녔기 때문이다. 한 지인은 퇴직 후 자신이 의미 없는 존재라고 느끼고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고 한다. 최근 계약직 업무를 얻게 된 그는 출근하는 것 자체가 너무 행복하다고 말한다.
김부장이 조직 내에서 그토록 쌓으려던 힘은 무엇일까? 바로 ‘명함의 힘’이다. 많은 직장인이 명함에 있는 회사와 직책, 이를테면 상무, 팀장, 국장, 교수 등이 온전한 자신인 양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속해 있던 조직을 떠나 계급장을 떼는 순간, 자신을 대변해 주던 명함은 사라지고 ‘발가벗은 나’만 남게 된다. 그리고 이때부터는 진정한 실력으로 생존해야 한다.
100세 시대, 퇴직 전에 미리 준비가 필요하다. 야생은 그렇게 만만하거나 호락호락하지 않다. 하지만, 미리 준비한 사람에게는 행운이 따른다.
'사직서를 쓰기 전에 꼭 답해야 할 10가지 질문'이 있다. 이 질문은 ‘인생을 살면서 자신에게 던져야 할 10가지 질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필자의 실제 경험을 토대로 만든 질문이며, ‘직장인 뼈 때리는 질문’으로도 불리고 있다. 필자 역시 40대 중반 대기업 퇴사 후 야생에서 연착륙하기까지 시행착오를 거쳤지만, 스스로에게 던진 이 질문들이 퇴직 후 ‘코치’라는 평생 직업을 미리 준비하고 안착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 사직서를 쓰기 전에 꼭 답해야 할 10가지 질문
(인생을 살면서 자신에게 던져야 할 10가지 질문)
1. 남은 삶을 어떻게 살고 싶은가?
2. 어떤 일을 할 때 가슴이 뛰는가?
3. 평생 덕업일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4. 회사가 아닌 다른 대안으로 무엇이 준비되어 있는가?
5. 내 이름 석 자만으로 홀로 설 수 있는 자생력을 갖췄는가?
6. 나의 핵심 역량과 전문 분야는 무엇인가?
7. 내 분야에서 자신 있게 내밀 수 있는 프로필이 있는가?
8. 나를 도와주고 협력할 수 있는 인적 네트워크가 있는가?
9. 10년 뒤 내가 꿈꾸는 나는 어떤 모습인가?
10. 언제라도 사직서를 던지고 나올 용기가 있는가?
[출처] <발가벗은 힘>, 이재형
당신은 10가지 질문 중 몇 개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가?
‘명함의 힘’의 반대말은 ‘발가벗은 힘’이다. ‘발가벗은 힘(Naked Strength)’은 영국 시인 앨프레드 테니슨의 시 <참나무(The Oak)>에 등장하는 말이다. 나뭇잎을 다 떨군 겨울나무가 오로지 자신의 벗은 몸만으로 겨울을 나야 하듯, 우리는 본래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과 의지, ‘발가벗은 힘’으로 우뚝 서야 한다. 어떤 회사에 다니는지, 명함과 직책은 무엇이고 어떤 프로젝트를 성공시켰는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자신의 실력만으로 설 수 있는 힘이 필요한 것이다. 따라서, ‘발가벗은 힘’은 회사를 떠나도 홀로서기 할 수 있는 힘, 자신의 이름 석 자만으로 회사 밖에서도 통하는 진짜 역량을 말한다. ‘발가벗은 힘’을 키워야 회사 안에서도, 밖에서도 생존할 수 있고, 자신이 원하는 삶, 자유로운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이다.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앉은 새가 불안에 떨지 않는 이유는 자신의 날개를 믿기 때문이다. 당신은 지금 명함이 아닌 당신의 이름 석 자만으로도 자신이 있는가? 자신의 날개로 비상할 ‘발가벗은 힘’을 갖췄는가? ‘사직서를 쓰기 전에 꼭 답해야 할 10가지 질문’에 대한 만족스러운 답을 가지고 있다면, 회사 안에서든 밖에서든 당당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김부장’이나 ‘김상무’가 아닌, ‘김낙수’로서 말이다.
<한경닷컴 The Lifeist> 이재형 비즈니스임팩트 대표, 세종사이버대학교 경영대학원 MBA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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