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대규모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해야 하는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이 열리면서 엔비디아, AMD 등 글로벌 반도체 설계회사들은 이 기술에 매달렸다. 기술만 손에 넣으면 구리 배선의 한계인 느린 속도, 발열, ‘전기 먹는 하마’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어서다. 이르면 내년부터 AI 서버용 칩을 시작으로 실리콘 포토닉스가 적용된다. 이들 기업이 맡긴 설계도를 구현하는 역할을 맡은 파운드리업계에도 신시장이 열린 것이다.
신기술이 대거 들어간다. 데이터가 담긴 빛을 웨이브 가이드에 효과적으로 싣기 위해 고성능 렌즈를 칩과 빛의 경계 지점에 달아야 한다. 칩 안에 들어온 빛을 0 또는 1의 디지털 신호로 구분해 주는 ‘공진기’라는 장치도 필요하다. 공진기를 거쳐 빛 신호 구별이 끝나면, 이걸 다시 전기신호로 바꿔 바깥으로 전달해야 한다. 빛을 활용한 ‘최첨단 미세 기술의 집합체’인 셈이다.상용화에 처음 성공한 회사는 인텔이다. 2016년 멀리 떨어져 있는 서버들이 빛으로 대화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장치인 ‘트랜시버’ 안에 실리콘 포토닉스를 구현하는 데 성공했지만 시장성이 떨어져 큰 주목은 받지 못했다.
잊힌 실리콘 포토닉스를 다시 살린 것은 AI 붐이다. AI 반도체의 3대 문제인 느린 속도, 발열, 높은 전력 소모량을 다 잡을 유일한 기술이어서다. 최신 AI 모델을 구현하려면 수백억 개의 숫자값(파라미터)이 필요한데, 전통적인 구리 배선에서는 도로 위 교통 체증처럼 병목현상이 심해진다. 고대역폭메모리(HBM)가 차로를 대폭 늘려서 병목현상을 해소하는 방식이었다면, 실리콘 포토닉스는 이 도로 위에 KTX를 까는 셈이다.
완성된 기술은 아니다. CPO는 트랜시버보다 난도가 높다. 온도에 민감한 빛의 성질에서 첫 번째 난관이 출발한다. 문제가 생기면 수천만원짜리 AI 반도체를 통째로 들어내야 하는 것도 문제다. 그만큼 제대로 설계해야 한다는 의미다.
CPO 시장의 선두주자는 TSMC다. 최대 고객 중 한 곳인 엔비디아가 실리콘 포토닉스 기술 개발에 적극적인 덕분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3월 개발자 콘퍼런스 ‘GTC 2025’에서 “트랜시버 비용이 안 드는 데다 전기 사용량도 감소하는 만큼 데이터센터 기업의 비용이 획기적으로 절감될 것”이라고 실리콘 포토닉스를 적용한 스위치 칩을 소개했다. TSMC는 기술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아야르랩스, 셀레스티얼AI, 라이트매터 등 미국 실리콘밸리의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스타트업)과 손발을 맞추고 있다.
반도체업계는 삼성의 싱가포르 R&D 법인에 주목하고 있다. A*STAR 등 국책연구기관과 파운드리 기업 컴파운드텍을 가진 싱가포르는 실리콘 포토닉스 강국으로 꼽힌다. HBM용 패키징 장비를 국내에 공급하는 장비업체 ASMPT의 본사도 싱가포르에 있다. 삼성은 이곳에서 TSMC 출신 엔지니어를 뽑는 등 조직 확충에 나섰다. 동시에 AI 반도체 설계 회사인 브로드컴과 손잡고 실리콘 포토닉스 상용화 작업에도 들어갔다.
삼성전자는 실리콘 포토닉스를 파운드리 대형 고객 추가 확보를 위한 ‘열쇠’로 보고 있다. 2.5차원(2.5D), 3차원(3D) 등 최첨단 패키징 시장에서 TSMC에 밀리는 지금의 판도를 뒤집을 반격 카드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업계는 삼성이 실리콘 포토닉스의 시장 잠재력을 감안해 ‘파운드리 시장의 HBM’으로 점찍었을 것으로 예상한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CPO 상용화 시점을 2027년으로 밝힌 만큼 이때부터 TSMC와의 진검승부가 시작될 것”이라며 “개별 칩에 실리콘 포토닉스가 적용되는 2030년부터는 파운드리 시장의 핵심 전쟁터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강해령/김채연 기자 hr.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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