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긴 보릿고개가 이어지고 있는 한국영화가 ‘흉작’으로 한 해를 마감할 분위기다. 영화 ‘주토피아’, ‘국보’ 등 해외 영화들이 박스오피스를 장악한 가운데 ‘쌍천만’ 블록버스터 시리즈인 ‘아바타:불과 재’(이하 아바타3)까지 상륙하기 때문이다. 반면 이렇다 할 개봉작이 없는 한국영화는 극장가 연말 특수마저 누리지 못하게 됐다.
日·할리우드 점령한 연말 극장가
1일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달 마지막 주 주말(28~30일) 관객 수 1~5위를 모두 외화가 차지했다. 이 기간 205만 명이 극장을 찾았는데, ‘주토피아2’(162만), ‘위키드:포 굿’(13만), ‘나우유씨미3’(12만), ‘체인소 맨:레제편’(4만), ‘국보’(2만7000) 등 상위 다섯 편의 관객 점유율이 96.2%(195만)에 달했다. 연말로 접어드는 시점에서 외화가 박스오피스를 독식한 것이다. 국내 영화 중 1만 명 이상 관람하며 유의미한 성적을 낸 작품은 윤가은 감독의 ‘세계의 주인’이 유일했다.
올해 연말은 외화 쏠림 현상이 두드러진다. 특히 일본영화의 약진이 눈길을 끈다. 최근 ‘귀멸의 칼날:무한성편’(566만 명)이 개봉 3개월 만에 올해 국내 박스오피스 전체 1위에 오른 게 대표적이다. 이상일 감독의 ‘국보’도 가부키라는 왜색 짙은 소재와 175분의 긴 러닝타임, 300여 개에 불과한 적은 스크린 수의 제약에도 10만 명을 돌파하는 등 애니메이션·실사 영화를 가리지 않고 주요 작품들이 국내시장에서 돋보이고 있다.

이달 들어선 미국 할리우드발 외화 강풍이 거셀 예정이다. 앞서 개봉한 ‘주토피아2’가 흥행하는 상황에서 오는 17일 ‘아바타3’가 개봉한다.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블록버스터 IP(지식재산권)인 아바타 시리즈는 2009년 개봉한 1편이 1360만, 2022년 속편이 1082만 명으로 ‘쌍끌이 천만’ 영화에 올랐을 만큼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제임스 카메룬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3편도 아이맥스(IMAX) 등 특수관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텅 빈 창고’ 韓 영화, 대항마 없다
반면 한국 영화는 잔뜩 몸을 움츠리고 있다. 영화계에 따르면 오는 3일 개봉하는 배우 하정우가 연출까지 맡은 ‘윗집 사람들’, 배우 허성태 주연의 ‘정보원’ 정도가 연말 신작 라인업으로 거론된다. 다만 제작·마케팅 규모 측면에서 외화 대작과 맞붙을 만한 체급의 영화는 아니라는 평가다. ‘소방관’(385만), ‘하얼빈’(491만) 등 국내 영화가 해외 작품인 ‘모아나2’(337만), ‘위키드’(228만)를 눌렀던 작년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양새다.

영화계는 성탄절을 전후해 전통적인 성수기로 꼽히는 연말 특수를 겨냥한 ‘텐트폴’ 영화를 꾸준히 선보여왔다. ‘서울의 봄’(1312만)과 ‘노량: 죽음의 바다’(457만)가 개봉한 2023년의 경우 12월 한국영화 관객 점유율이 82%로 외화를 압도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에도 한국영화 점유율이 57%로 외화를 앞섰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관람 트렌드 변화로 전통적인 성수기가 사라지는 만큼 개봉시점도 유연해지고 있다”면서도 “관객을 끌어당길 만한 영화가 없다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연말 극장가의 한국 영화 실종은 일찌감치 예견돼 왔다. 장기불황에 따른 투자경색으로 제작편수가 급감한 데다, 창고 영화들도 모두 소진됐기 때문이다. 천만영화는 커녕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도 300만 문턱을 넘지 못하는 부진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아바타3’ 같은 흥행 보증수표와 맞붙기 부담스러운 측면도 있다. 영화계는 류승완 감독의 ‘휴민트’, 장항준 감독의 ‘왕과 사는 남자’ 등 올해 촬영을 마친 기대작들은 내년 설 연휴를 전후해 개봉할 것으로 보고 있다.
유승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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