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몰 검색창에 ‘우유’를 넣으면 자동 완성 기능이 ‘1L’를 붙여준다. 많은 이들이 이 두 단어를 순차적으로 입력해 상품을 검색하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1L 용량의 우유를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남양, 매일, 파스퇴르 등 대다수 브랜드가 900mL 제품을 밀고 있어서다. 2020년을 전후해 여러 업체가 경쟁적으로 우유 용량을 줄이면서 큰 우유 용량 표준이 900mL로 바뀌었다. 소포장 도시락 김 시장도 비슷한 상황이다. 상식적으론 한 봉지에 김 10장이 들어 있어야 하지만, 9장이 담긴 제품이 훨씬 더 많다.용량 줄이기는 소비재 업체와 프랜차이즈 식당 등이 제품 가격을 올릴 때 자주 쓰는 수법이다. 소비자들이 용량보다 가격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제품 포장 디자인을 교체하거나 상품명을 바꾸면서 은근슬쩍 용량을 줄이는 게 일반적이다. 이런 사례가 워낙 많다 보니 수축(shrink)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을 합친 ‘슈링크플레이션’이란 용어까지 등장했다.
한국은 1999년 ‘단위가격 표시의무제도’를 도입했다. 제품 포장지에 제품 가격뿐 아니라 단위당 가격도 함께 표시해야 한다. 2023년엔 변경 전후 용량까지 적도록 규제를 강화했다. 이 규정만 잘 지키면 용량 줄이기도 불법이 아니다. 문제는 깨알 같은 크기의 단위 가격, 용량 변화 정보를 눈여겨보는 소비자가 많지 않다는 데 있다. 정부 규제에도 용량 줄이기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 배경이다.
대통령실이 슈링크플레이션 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에 육박해 편법 가격 인상 사례가 급증할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프랜차이즈 업체의 치킨처럼 중량표시 의무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제품의 가격 인상을 억제할 방안도 추가로 마련할 계획이다.
정부가 어떤 대책을 내놓는다고 해도 슈링크플레이션을 100% 막을 순 없는 노릇이다. 가만 따지고 보면 기업만 탓할 일도 아니다. 수입 원재료 가격은 물론 인건비, 전기요금 등도 계속 오르고 있어서다. 인플레이션엔 누구도 당할 재간이 없다.
송형석 논설위원 cl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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