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진통 끝에 2일 내년도 예산안을 합의 처리하면서 5년 만에 법정시한을 준수했다. 애초 양당 원내 지도부는 이재명 정부 국정과제와 관련한 쟁점 사업 예산을 놓고 대립해 올해도 ‘늑장 처리’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많았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국정 철학과 관련한 예산은 반드시 사수하겠다고 버텼고, 국민의힘 내에서 일방 처리는 막아야 한다는 기류가 형성돼 막판 합의에 이르렀다. 야권 일각에서는 지역사랑상품권 등 국가 재정에 부담을 주는 주요 예산을 감액하지 못하는 등 협상 결과가 아쉽다는 평가도 나온다.
민주당이 주장한 부분 중에선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재해복구 시스템 구축, 분산전력망 산업 육성, AI 모빌리티 실증사업 등 예산이, 국민의힘이 요구한 부분 중에선 도시가스 공급 배관 설치 지원, 국가장학금 지원, 보훈유공자 참전명예수당 지원 등 예산이 증액됐다.
지역사랑상품권 발행과 국민성장펀드 등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와 관련한 예산은 그대로 유지됐다. 양당은 애초 대미 통상 프로그램 예산을 1조9000억원 감액하는 데도 합의했으나, 대미투자특별법(한·미 전략적 투자 관리를 위한 특별법안)이 국회에서 논의 중이라는 점을 고려해 최종안에는 담지 않았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야당 간사인 박형수 의원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법이 통과된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은 우리 당으로선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그런 차원에서 빠졌지만 예산안 전체에선 그 정도 액수(초안)로 조정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날 오전 양당이 마련한 합의문 초안에는 ‘대미 통상 대응 프로그램 예산 1조9000억원을 감액하고, 한미전략투자공사 출자예산 1조1000억원을 반영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야당은 아쉬움은 크지만 불가피한 합의였다는 입장이다. 다수 의석을 보유한 민주당이 예산안 단독 처리까지 시사한 상황에서 야당이 활용할 수 있는 협상 레버리지가 마땅히 없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국민의힘은 애초 지역화폐와 농어민 기본소득 등 예산을 ‘이재명표 포퓰리즘 예산’으로 규정하고 전액 삭감을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당 의원총회에서 “예산안 처리 결과와 관련해 저를 비롯해 의원 모두 아쉬움이 남을 것”이라며 “다수당이 수적 우세를 앞세워 소수당을 배려하지 않는 상황에서 민생예산이 중요하기에 대승적으로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야당이던 민주당이 의석수를 앞세워 감액 예산을 일방 처리한 전례가 있는 만큼 일부라도 야당 요구안을 반영하는 게 중요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 것으로 해석된다.
야당으로선 대통령실 특수활동비를 삭감하지 못한 점도 뼈아픈 대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이 지난해 예산 정국에서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 특활비를 전액 삭감하고 정부 예비비를 절반으로 줄인 것과 올해 협상 결과가 판이하기 때문이다.
정소람/정상원/이시은 기자 r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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