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이 최근 급등락을 반복하며 투자자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사상 최고가를 돌파한 직후 한 달 새 30% 가까이 급락하자 “지금 저가 매수해도 될까”라는 의문이 제기되지만 아직은 섣부르다. 대규모 청산 사태의 후유증, 뚜렷한 상승 모멘텀 부재, 그리고 매크로 악재 등으로 당분간 약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암호화폐 시장에서는 하루 만에 190억 달러(약 25조 원) 규모 포지션이 강제 청산되는 전례 없는 사태가 발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대중국 100% 관세 부과 발표에 비트코인 가격은 순식간에 12만 달러대에서 10만 달러 초반까지 폭락했다.
그 이후 시장에는 세 갈래의 하방 압력이 겹쳤다. 첫째, ‘고래’로 불리는 대형 투자자들이 대거 매도에 나섰다. 급락 국면에서 장기 보유자들까지 물량을 던지며 지난 한 달간 약 81만5000 BTC가 시장에 출회되었다.
이로 인해 공급이 수요를 크게 웃돌았고 기관 자금도 통화정책 불확실성 속에 빠르게 유출되고 있다. 둘째, 알고리즘 프로그램 매매는 하락폭을 한층 증폭시켰다. 가격이 주요 지지선을 이탈하자 AI 트레이딩 봇들이 자동 매도 물량을 쏟아내면서 5~8% 수준의 조정이 20% 넘는 폭락으로 악화되었다. 셋째, 일본 금리 상승에 따른 엔캐리트레이드 청산 우려가 불거졌다. 일본 10년물 국채금리가 1.84%까지 치솟자 엔화 저금리로 조달해 투자하던 자금이 급속히 빠져나가면서 하루 새 6억4000만 달러 규모의 추가 청산이 발생했고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이 5% 이상 급락했다. 이는 글로벌 유동성 측면에서 엔캐리트레이드 역전이 암호자산 시장에 미칠 충격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였다.
결과적으로 비트코인은 10월 초 고점 대비 30% 넘게 급락한 이후 별다른 반등 기미 없이 약세를 이어가고 있다.
비트코인 가격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매크로 변수는 단연 미국 금리다. 금리가 상승하면 채권 등 안전자산의 매력이 높아지고 차입 비용이 증가하면서 위험자산 선호가 위축된다. 반대로 금리가 인하되면 유동성이 확대되고 위험자산으로의 자금 유입이 활발해지는 경향이 있다.
다만 Fed는 여전히 물가안정 의지를 강조하고 있어 인하 시점이 더 늦춰질 위험도 남아 있다. Fed가 시장의 기대보다 일찍 금리인하 사이클을 종료하거나 지연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시장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고 판단한다. 특히 FRB의 의장 교체후보 발표 및 금리 통화정책 관련 발언들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으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12월 10일 Fed의 금리 결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금리 변화가 명확해질 때까지 비트코인 등 위험자산은 방향성을 잡기 어려운 구간에 놓여 있을 것이다.
중장기적으로는 규제와 정책 환경 개선에 대한 기대가 비친다. 미국에서는 2025년 여름 연방 하원을 통과한 디지털 자산 명확성 법안(CLARITY Act)을 비롯해 암호화폐 관련 법제 정비가 추진 중이다. 이 법안은 암호화폐의 증권·상품 여부를 명확히 구분하고 거래소 등에 통합 규제를 도입해 FTX 파산과 같은 사태 재발을 막고 시장 신뢰를 높이려는 것으로, 최종 입법 시 암호자산에 대한 제도적 명확성이 크게 제고될 전망이다. 이는 기관투자가들의 참여를 가로막던 불확실성을 해소하여 비트코인의 정당성을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또한 2026년 예정된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 암호자산 육성 기조가 힘을 얻을 가능성도 있다. 규제 명확화와 더불어 이러한 정치적 호재는 비트코인의 법적 지위 안정과 대중 인식 개선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장기적으로 가장 긍정적인 부분은 최근 기관투자가들의 비트코인에 대한 접근이 눈에 띄게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현물 비트코인 ETF 등 주요 상품들이 출시 직후 수십조원의 자금을 끌어들이며 기관 자금 유입의 물꼬를 텄다. 이러한 대규모 자금 유입은 비트코인 시장의 유동성을 높여 변동성을 완화하는 한편, 중동 국부펀드를 비롯한 전 세계 기관투자가들의 비트코인 포트폴리오 편입을 가속화했다. 실제로 블랙록과 피델리티의 ETF는 출시 이후 지속적으로 비트코인 보유량을 늘려왔으며 일시적인 차익실현으로 소폭의 자금 이탈이 나타날 때에도 곧바로 새로운 매수세로 이어지는 견조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전통 금융권의 인식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블랙록 CEO 래리 핑크가 비트코인을 ‘디지털 금’으로 칭하는 등 기존에 회의적이던 월가 거물들마저 긍정적으로 돌아서고 있어 비트코인이 주류 투자자산으로 인정받는 분위기다. 기관투자가 다수는 연기금이나 은퇴 자산 등 장기 성향의 자금으로, 한번 편입한 비트코인을 쉽게 매도하지 않아 시장의 하방 압력을 줄이는 안정적 버팀목이 되고 있다. 물론 일부 헤지펀드 등 단기 차익을 노리는 플레이어들의 매매는 여전히 시장 변동성을 키우지만 전체적으로는 기관 포지션이 장기 투자에 초점이 맞춰지는 추세다.
반면 장기 투자자라면 현재 가격대가 오히려 전략적 매수 구간이 될 수 있다. 온체인 지표상 장기 홀더들의 수익률이 역사적 저점권에 근접했고 일부 바닥 신호도 관측되고 있다. 무엇보다 최근의 고래 매도세가 시장 이탈이라기보다 사이클 후반부의 이익 실현이라는 점에서 지나친 비관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결국 투자 기간에 따른 전략 차별화가 요구된다. 단기 트레이더는 뚜렷한 추세 전환 신호가 나타날 때까지 관망하며 리스크 관리를 우선해야 한다. 장기 투자자라면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현 조정장에서 분할 매수를 검토할 만하다. 다만 이 경우에도 거시 지표와 규제 환경 변화를 주시하며 여유자금으로 신중하게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조태나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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