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1년을 맞아 국민의힘 내부에서 당내 세력 재편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당 지도부와 소장파, 수도권 의원들과 TK(대구·경북) 중진들이 '계엄 사과'를 두고 서로 다른 메시지를 선택하면서다.
표면적으로는 '계엄에 대해 사과하느냐 마느냐'를 둘러싼 메시지 충돌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내년 6·3 지방선거를 앞둔 '수도권 대 영남', '초재선 소장파 대 중진'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힘겨루기가 읽힌다.
초·재선을 주축으로 모인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대국민 사과문을 통해 "계엄은 우리 국민이 피땀으로 성취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짓밟은 반헌법적·반민주적 행동이었다"며 "뼈를 깎는 변화와 혁신으로 국민께 다시 희망을 드릴 수 있는 정당으로 거듭나겠다"고 했다.
대국민 사과문에 이름을 올린 이들 중 상당수는 '수도권 초·재선' 의원들이다. 4선의 안철수(경기 성남시분당구갑), 3선의 송석준(경기 이천시), 김성원(경기 동두천시양주시연천군을) 의원과 재선 배준영(인천 중구강화옹진), 초선인 김재섭(서울 도봉갑), 김용태(경기 포천시가평군), 박정훈(서울 송파구갑), 조은희(서울 서초구갑) 의원 등이다.
부산·경남(PK)의 의원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한 것도 눈에 띈다. 이성권, 최형두, 신성범, 서범수, 정연욱 의원 등이 PK를 지역구로 뒀다. 여기에 강원과 영남 일부 소장파 의원들이 동참하면서 '절연파'의 한 축이 형성됐다. 과거 계파로 따지면, 중도 성향의 초재선 소장파에 일부 친한계 의원들이 힘을 보탠 모습이다.
집단 사과에 참여하지 않은 이들 중에서도 서울·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의원들 상당수는 개별적 사과에 나서기도 있다. '계엄 사과' 국면에서 옛 친윤계나 친한계 등 계파보다는 지역구 정서가 작동한 것으로 보이는 지점이다.
윤 전 대통령과 사석에서 '호형호제'하는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친윤계 핵심 권영세 의원(5선·서울 용산구)이 대표적이다. 권 의원은 "야당의 입법 독재와 폭주가 아무리 심각했다 하더라도, 계엄 선포는 결코 해서는 안 될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했다.
또 김대식·배현진·박수민·김미애·김희정·신동욱·조정훈·정성국·조경태 의원 등 서울이나 PK에 지역구를 둔 의원들이 개인 인터뷰 등을 통해 사과에 동참했다.
우선 25명의 공동 성명 명단에는 권영진(재선·대구 달서병), 김형동(재선·경북 안동예천), 우재준(초선·대구 북구갑), 이상휘(초선·포항남울릉) 의원 등 일부 TK 지역구 의원들이 포함됐다. 별도 사과 입장문을 낸 경북 재선 박형수(재선·경북 의성청송영덕울진) 의원까지 합쳐도 TK 지역에서 공개적으로 사과한 의원은 총 5명에 그쳤다. 이는 TK 지역 25명 중에서는 소수파에 속한다.
결국 지방선거가 6개월여 앞으로 나온 가운데, 당내 구도가 옛 '친윤계 vs 친한계'에서 '수도권·PK vs TK'로 분화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실상 국민의힘 전멸했던 수도권과 최근 선거에서 민주당에 대거 텃밭을 넘겨주고 있는 PK 의원들이 일차적으로 절연파로 모인 것이다.
집단 사과에 동참하거나 개별 사과 메시지를 낸 '절연파'들의 셈법은 명확하다. 사과를 통해 중도층으로부터 최소한의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면, 공천을 받는다 하더라도 정치 생명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반면 TK 다수의 의원은 지지층 결집을 우선시하며 애매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장동혁 대표는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라며 '사과'라는 표현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사실상 당내에서 쏟아진 사과 요구를 거부한 것이다.
당 지도부는 이를 두고 메시지를 양분한 '투트랙 전략'이라고 설명했지만, 오히려 당 안팎에선 당 지도부의 리더십이 부재가 드러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일부 의원들이 장 대표를 비판하고 나선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김재섭 의원은 "장 대표는 반성과 성찰은커녕, 계엄이 불가피했다는 식의 또 다른 '계몽령'을 선언했다"며 "우리 당을 폐허로 만든 윤석열과 절연하지 못하면 대표의 자격도, 국민의힘의 미래도 없다"고 비판했다. 박정훈 의원도 "장동혁 지도부가 지금 당원 다수의 마음을 대표하고 있는 게 맞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지역구에서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당내 의원들 저마다 다른 메시지가 나오는 상황에서, 대표가 이를 하나로 끌고 갈 힘도 부족하다 보니 이런 현상이 벌어진 것"이라며 "내년 지방선거가 다가올수록 민심의 흐름에 따라 이런 흐름이 더욱 심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슬기 한경닷컴 기자 seulk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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