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민간자문위원회에선 약 1700조원 규모의 미적립부채 문제를 놓고 격렬한 공방이 벌어졌다. 한쪽에서는 “미래 세대에 떠넘길 빚 폭탄”이라며 당장 규모를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반대쪽에선 “국민에게 불필요한 공포심을 조장한다”고 반발했다. 미적립부채란 정부가 앞으로 국민에게 지급하겠다고 약속한 연금에서 현재까지 쌓인 적립금과 미래 보험료 수입을 뺀 차액이다. 당장 갚아야 하는 부채는 아니지만, 결국 미래 세대의 어깨 위에 놓인 빚이다.지난 3월 20일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2033년까지 13%로 높이고, 소득대체율은 내년부터 40%에서 43%로 상향하는 ‘모수개혁’ 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 2차 연금개혁은 뒷전으로 밀리는 분위기다. 하지만 기금 고갈 시점을 2056년에서 2071년으로 15년 늦췄을 뿐, 연금 재정의 파괴적 구조는 그대로다. 더구나 이번 국민연금법 개정안은 국가가 연금 급여의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지급을 책임진다는 ‘보장 의무’를 명문화했다. 이로써 연금 지급은 피할 수 없는 국가의 의무이자, 회피 불가능한 정부 책임이 됐다. 의도했든 안 했든,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성이 국민연금에 달린 셈이다.
기금이 완전 고갈될 것으로 예상되는 2071년부터는 매년 막대한 적자를 정부 재정으로 메우지 않을 수 없다. 결국 국가 전체 예산을 몽땅 털어 넣어도 부족한 지경이 된다. 파국은 예고된 것과 다름없다. 누군가는 “미래 세대가 월급의 35%가량을 털어 넣으면 된다”, “연금 운용 수익률을 올해처럼 매년 20%로 높이면 해결된다”고 하지만 실현 불가능한 얘기다. 국민 생활을 무시한 채 보험료를 한없이 높여갈 수도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다간 손 쓸 수 없게 된다. 지금부터 ‘버퍼펀드(Buffer Fund)’를 쌓아 미리 대비해야 하는 이유다. 국민연금 기금과 별도로 버퍼펀드 계정을 만들고, 매년 약 10조원씩 적립해 장기 운용하는 것이다. 올해부터 매년 10조원씩 10년간만 쌓으면 연 6%의 보수적인 수익률(실제 지난 20년간 연평균 운용 수익률은 6.27%)을 적용하더라도 2071년 1220조원 규모의 거대한 완충 장치가 구축된다. 매년 10조원씩 2070년까지 쌓는다면 그 규모는 2400조원에 달한다. 2070년대부터 운명적으로 예고된 ‘죽음의 계곡’을 무사히 건널 수 있을 만한 돈이다.
문제는 재원이다. 정부는 매년 20조~30조원 규모의 지출 구조조정을 단행한다. 이 중 10조원을 버퍼펀드로 돌리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정부는 이미 공무원연금·군인연금에 한 해 10조원 가까운 세금을 투입하고 있다. 형평성 차원에서라도 비슷한 규모의 돈을 국민연금을 위해 출자하는 건 마땅하고 타당하다. 일본 정부는 우리의 국민연금과 비슷한 공적연금(GPIF)에 600조원가량을 넣었다.
기초연금을 구조조정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현재 전체 노인의 70%에 기초연금을 지급하면서 연간 25조원 이상을 쓰고 있다. 2050년에는 한 해 들어가는 돈이 127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기초연금 구조를 합리적으로 조정해 남는 재원 일부를 버퍼펀드에 출자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만하다. 장기적으로 노인층에 더 높은 수준의 안전판을 제공할 수 있는 길이다.
기성세대는 국민연금의 혜택을 가장 풍족하게 누린 세대다. 그 대가로 우리 아이들은 아무 죄 없이 국가 재정 붕괴 사태를 마주해야 한다. 버퍼펀드는 혜택을 누린 기성세대가 미래 세대에게 져야 할 최소한의 책임이자 도리일 것이다. 시한폭탄은 지금도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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