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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오는 날 임윤찬의 '라벨'… 재즈의 흥과 여운으로 빛났다

입력 2025-12-05 15:36   수정 2025-12-05 16:26

[관련 기사] ▶▶▶ 45만원 임윤찬 공연서 쩌렁쩌렁 통화…최악의 '관크'에 분노



‘디베르티스망(divertissement).’ 올해 탄생 150주년을 맞은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1875~1937)은 기분 전환, 오락, 심심풀이 등의 뜻을 지닌 이 프랑스어를 자신의 피아노 협주곡 G장조의 제목으로 붙이길 원했다. 협주곡은 심오하거나 극적인 효과를 추구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더없이 즐겁고 화려할 수 있다는 소신이 그대로 반영된 작품이라서다. 지난 4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라벨 피아노 협주곡을 선보인 임윤찬은 마치 작곡가의 생각과 감정을 통달한 듯 매 순간 재즈의 자유로움과 흥취, 라벨의 다채로운 빛깔을 불러내며 놀라움을 자아냈다. 그가 라벨 피아노 협주곡을 국내에서 선보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임윤찬은 이날 지휘자 다니엘 하딩이 이끄는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의 협연자로 무대에 올랐다. 피아노 세팅이 끝나고 무대 뒷문이 열리자, 턱선까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임윤찬이 기다렸다는 듯 빠르게 걸어 나왔다. 들릴 듯 말 듯 조심스럽게 1악장의 첫 소절을 시작한 임윤찬은 서서히 건반을 누르는 힘의 세기와 소리의 명도를 높이며 작품의 생동감과 입체감을 살려냈다. 누군가 손을 위에서 낚아채듯 날쌔게 튀어 오르는 타건으로 재즈풍의 긴장감 넘치는 선율과 경쾌한 리듬을 연신 선명하게 드러냈다.



전체를 관통하는 긴 호흡을 유지한 채로 모든 음의 색채를 세밀하게 변화시키며 라벨의 풍부한 서정을 펼쳐내는 구간에선 그의 깊어진 음악성과 단단한 집중력, 생생한 표현력을 체감할 수 있었다. 유려한 움직임으로 기교적인 악구들을 정교하게 처리하면서도 지나친 감정 표현은 자제했고, 고음과 저음, 장음과 단음, 연결과 단절 등의 대비를 한순간도 놓치지 않았다. 작품의 구조와 짜임새를 깔끔하게 풀어내는 능력 또한 돋보였다.

모차르트의 영향을 받은 2악장에선 긴 피아노 독주가 이어지는데, 임윤찬은 수분을 머금은 듯한 독보적인 음색과 모든 음을 하나의 줄로 꿰어내는 듯한 긴밀한 진행으로 사색적이면서도 우아한 악상을 펼쳐냈다. 임윤찬은 라벨이 고통스러울 만큼 치밀하게 다듬었다고 알려진 이 악장의 한음 한음을 천천히 곱씹으며 오묘한 분위기를 불러냈다.

연주 중 돌연 객석의 한 휴대전화에서 남성의 큰 목소리가 약 30초간 이어지는 소란이 일기도 했으나, 임윤찬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완전히 자신의 음악 세계에 빠져있단 방증이기도 했다. 오히려 그는 건반을 누르는 깊이와 무게, 페달 움직임, 피아노의 배음과 잔향 효과, 장식음의 처리 등을 더 예민하게 조율하면서 때론 붉게 타오르는 노을처럼, 때론 하얗게 반짝이는 윤슬처럼 장면이 전환되는 듯한 시각적 효과를 일으켰다.



연주에 5분이 채 걸리지 않을 정도로 짧은 3악장에선 피아노의 속주가 이어지는데, 임윤찬은 유려하게 움직이는 손놀림과 명료한 터치로 울림의 균질성을 유지하면서도 강조해야 할 표현은 빠짐없이 짚어내면서 라벨이 작품에 녹여낸 활력의 정점을 효과적으로 끌어냈다. 다니엘 하딩의 명료한 지휘에 따라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는 까다로운 모티브를 정밀하게 조형해내며 솔리스트와 절묘한 균형을 이뤘다. 클라리넷, 피콜로, 트롬본, 타악기 등 악단 독주 악기들은 특색 있는 음색과 섬세한 리듬 처리로 피아노와 빈틈없는 대화를 이뤘고, 시종 팽팽한 긴장감을 선사했다.

연주를 끝낸 임윤찬이 몇 번의 인사를 한 이후에도 박수는 끊이지 않았고, 그는 직접 편곡한 ‘고엽’과 코른골트의 ‘아름다운 밤’을 앙코르로 선보인 뒤에야 무대를 떠날 수 있었다. 임윤찬의 라벨은 한순간도 무겁지 않았고, 모든 음이 명랑하면서도 정교했다. ‘25분이 마치 2분처럼 짧게 느껴진 연주.’ 관객에게 고민보단 즐거움과 기쁨을 선사하겠다던 라벨의 의도가 순수하고도 투명하게 전달된 시간이었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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