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한 주 국내 공연계는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에 대한 관심으로 뜨거웠다. 국립오페라단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막 초연이 열린 지난 4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는 공연 시작 한참 전인 오후 2시 이전부터 이미 주차장이 만차였고, 음악당 주차장으로의 회차 안내가 이어졌다. 평일 오후임에도 로비는 오페라 애호가, 음악 전공자, 공연 산업 종사자로 붐볐다.
이 작품이 받는 유별난 관심은 오페라의 탄생 배경과 음악사적 의미에서 비롯된다.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흔히 낭만주의의 완성형 작품으로 평가된다. 다른 바그너 작품이 게르만 신화와 민족주의를 반영하는 것과 달리 이 작품은 작곡가의 체험이 서사의 핵심을 이루는 보기 드문 오페라다. 바그너는 후원자 오토 베젠동크의 아내 마틸데와의 비극적 사랑을 트리스탄과 이졸데에 투영했다. 1막 전주곡에서 시작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파-시-레#-솔#’의 이른바 ‘트리스탄 화성’은 기존 조성 체계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근대 음악의 문을 연 기념비적 코드다.
국립오페라단이 보도자료를 통해 소개한 1막의 나선형 구조물과 벽체들은 찾을 수 없었고, 전막에 걸쳐 같은 무대 장치로만 공연이 전개됐다. 무대 뒷면에 동일한 영상의 반복, 주인공들의 거대한 몸을 더 육중해 보이게 디자인된 의상도 바그너의 심오한 작품세계에 몰입하는 데 방해 요인이 됐다.
국립오페라단은 바그너 오페라가 전통적 무대와 현대적 해석이 공존하며 다양하게 상연되는 독일과 달리 이번 공연이 국내에서는 첫 전막 초연이었다는 점을 조금 더 세심하게 고려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콘월로 향하는 배를 우주선으로 설정하고, 주인공들에게 스타크래프트의 ‘프로토스’를 연상시키는 의상을 입힌 연출, 그리고 트리스탄의 상처에서 형광 노란색 액체가 흘러나오도록 한 설정은, 바그너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관객들에게 자칫 작품이 주는 메시지가 ‘인간성의 왜곡’으로 느끼게 할 가능성이 있었다.
반면 두 명의 테너 모두 ‘오페라 역사상 가장 낭만적 사랑 이야기’라고 일컫는 이 작품의 중심을 지탱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5일 공연에서 트리스탄 역을 노래한 테너 브라이언 레지스터는 성대에 큰 문제가 생긴 듯한 가창으로 객석에 불안감을 조성했다. 또 한 명의 트리스탄인 스튜어트 스켈턴 역시 설득력이 떨어졌다. 비대한 체격으로 거동이 불편한 그의 소극적 움직임이 낭만적 영웅의 이미지와 거리가 멀었다.
한국 성악가들의 활약은 빛났다. 마르케 왕을 맡은 베이스 박종민은 등장과 동시에 무대를 압도했다. 2막 독백에서 그는 자신의 충신과 사랑하는 이에게 배신당한 왕의 고뇌를 풍부한 성량과 깊은 저음으로 표현했다. 브랑게네 역의 메조소프라노 김효나도 안정적인 호흡과 표현력으로 작품의 무게중심을 단단히 지탱했다.
오페라의 음악을 책임진 츠베덴은 등장부터 달랐다. 그는 관행처럼 등장 박수를 받는 방식을 배제하고 장내가 암전된 후 조용히 지휘대에 올라 바로 전주곡을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음악의 긴장과 감정선이 연결되는 지극히 음악을 위한 연출이었다. 츠베덴은 빠른 전개와 조직적 긴장감을 강조하는 해석을 선보였다. 바그너 특유의 장대한 서사가 늘어지지 않도록 견고한 구조를 유지했다.
장시간 이어지는 공연 내내 서울시향의 연주는 안정적이었다. 특히 관악 파트가 제 역할을 해냈다. 2막 도입부 호른군의 중주는 완성도 높은 음정과 따뜻한 울림을 들려줬고, 베이스 클라리넷은 마르케 왕 독백의 심리적 무게를 단단히 지탱했다. 3막의 잉글리시 호른과 트럼펫은 기술적으로 완벽한 솔로를 펼쳤다.
조동균 기자 chodog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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