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국회 상임위원회는 ‘김범석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 3370만 명의 개인정보가 털린 사상 초유의 사태에도 쿠팡의 실질적 오너인 김범석 의장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증언대에 선 박대준 쿠팡 대표는 “김 의장의 소재를 모른다” “한국 사업은 제 소관”이라며 방패막이 역할을 했다. 또 “아직 2차 피해는 확인된 게 없다”고 말해 보이스피싱, 스미싱 우려가 극에 달한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이쯤 되면 위기 관리에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공감능력까지 결여됐다고 봐야 한다.쿠팡 측은 항변한다. 김 의장은 쿠팡 모회사인 미국 쿠팡Inc 경영자일 뿐 한국 법인 등기이사가 아니라는 논리다. 법적으로는 맞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눈 가리고 아웅이다. 김 의장은 차등의결권을 통해 전체 의결권의 약 75%를 틀어쥐고 있다. 한국 쿠팡의 이사 선임부터 대규모 투자, 보안 정책까지 그의 재가 없이는 불가능한 구조다. 권한은 그룹 총수처럼 휘두르면서 책임질 일이 생기면 미국인이라며 뒤에 숨는 것, 이것이 김범석의 글로벌 경영 스타일인지 묻고 싶다.
이번 사태의 원인이 된 3년 묵은 암호키 방치와 검증되지 않은 해외 인력 채용은 김 의장이 주도한 속도 지상주의와 비용 절감 경영 철학의 산물이다. C레벨 임원 다수를 외국인으로 채웠지만, 정작 그들이 한국 법규와 정서를 이해하지 못해 사고를 키웠다는 역설은 뼈아프다.
김 의장은 지난해 주식 매각으로 일부 지분을 현금화했다. 초고속 성장에 따른 과실은 가장 먼저 챙겼으면서 성장의 부산물인 사고 수습은 월급쟁이 임원에게 떠넘겼다는 비판이 나오는 대목이다. 김 의장의 이런 행태는 기업인 전반에 대한 불신을 키운다는 점에서 더 우려된다.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먹통 사태’ 때 고개를 숙이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위기 때마다 국민 앞에 선 것은 그들이 법적 책임자여서가 아니었다. 그것이 기업의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응당 보여야 할 태도였기 때문이다.
국민이 분개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이 사태를 대하는 쿠팡의 태도에 있다. ‘어차피 사람들은 쿠팡을 못 끊을 것’이란 다소 오만한 자신감이 읽혀서다. 그러지 않고선 홈페이지 사과문을 이틀 만에 슬그머니 내리고 그 자리에 ‘크리스마스 빅세일’ 광고를 내걸 수 없다.
미국 증시에 상장된 쿠팡이 높은 밸류에이션(가치)을 받는 것이 성장성 때문만은 아니다. 투명성과 사회적 책임감도 크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김 의장이 지금껏 보여준 것은 투명함, 책임감과 거리가 멀다. 지금처럼 법적 테두리 뒤에 숨어 숨바꼭질을 계속한다면 쿠팡은 혁신의 아이콘이 아니라 무책임의 대명사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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