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제국 침략에 맞서 완벽한 승리를 거둔 그리스 아테네는 30년간 페리클레스 시대를 거치며 경제적 번영과 민주주의를 꽃피웠다. 하지만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스파르타에 패하며 몰락의 길을 걷는다. 페리클레스 사후 불과 25년 만이다.아테네의 민주정치는 선동가가 설치는 민중의 중우정치로 변해갔고, 장기적이고 일관된 국가 정책은 실종됐다. 폭풍우로 침몰된 전함의 선원을 구조하지 못했다며 비난 여론이 들끓자 사령관 8명 중 6명을 사형에 처했고, 재판과 신임 사령관 선출로 시간을 낭비하는 사이 안보의 핵심인 흑해 방위를 소홀히 한 결과였다. 아테네는 해전다운 해전 한 번 하지 못한 채 동맹국을 포함해 군선 170척과 병사 3만 명을 적에게 넘겨주며 자멸하고 말았다.
국가는 번영의 시기를 끝내고 불황으로 접어들 때 파국을 맞는 경우가 많다. 국민이 분열하고 장기적 의무감을 저버린 채 단기적 이익에 급급하게 만든다. 국가 기강이 해이해질 때 모든 곳에서 기회주의가 고개를 쳐들고 경제 발전과 사회 통합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된다. 불안을 타자에게 전가시킨 결과인 분노는 인간을 맹목적으로 만들고 냉정한 판단력을 잃게 한다.
이런 토양에서 포퓰리즘도 번성한다. 국가는 공동체의 단일한 원천이다. 국가의 과제는 사회적 보호를 지속 가능한 수준에서 설정하는 것이다. 개인의 인센티브를 줄이지 않으면서 장기적 차원에서 공공 재정에 의해 뒷받침될 수 있어야 한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민주주의의 과도함을 고민했고 그 결과 지나친 민주적 선택을 제한하는 견제와 균형의 복잡한 체계를 구축했다.
국가의 존재, 법과 정부의 역할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데 필수 불가결한 기반이다. 시장 경제에 따른 물질적 풍요는 결코 저절로 이뤄지지 않는다. 물질적 성장이 반드시 도덕과 사회 발전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유능한 국가, 법치주의, 민주적 책임성을 갖춘 정부가 균형을 이룰 때만 가능한 것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다. 그런 의미에서 ‘아무것도 넘치지 않도록’ 하는 절제는 중요하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지혜, 용기, 정의와 함께 절제를 네 가지 주요 미덕의 하나로 간주했다. 절제는 한계에 대한 신중한 인식에서 나온다. 국가와 개인 모두 절제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것이 공동체 생존과 번영의 열쇠가 된다.
비상계엄 1년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민주주의를 수십 년 후퇴시킨 시대착오적 계엄은 절대 용납될 수 없는 것이지만 국회의 입법 폭주, 검찰 해체, 정치특검의 일상화, 사법부 독립을 침해하는 내란특별재판부와 사법행정위원회같이 헌법 및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행태 역시 빛의 혁명, 국민 주권 같은 화려한 말의 성찬으로 가릴 수 없는 역사의 후퇴가 아닐 수 없다.
정치의 궁극적 목적은 공화와 공존, 공영이다. 민주주의는 인간의 모든 가치를 조화시키고, 모든 모순을 제거한 완벽한 사회는 건설할 수 없음을 아는 사람들이 생존과 공존, 최소한의 정의와 한시적 평화를 위해 차선책으로 도입한 제도다. 독일 재상 비스마르크가 “정치는 가능한 것, 달성할 수 있는 것의 예술. 다시 말해 차선책의 예술”이라고 한 것도 그 때문이다.
사회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물질적 풍요와 전통적 의미의 국력이 아니다. 국민의 자질과 지도자의 비전이다. 역사가 위대한 이유는 광대한 비인간적 힘에 자리를 내주기를 거부하는 데 있다. 우리는 외부 상황을 선택할 수 없지만 그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지는 택할 수 있다. 정치의 계절이 올 때마다 시대 난제를 해결할 정치적 메시아를 기다려 보지만 언제나 헛된 꿈이었음을 깨닫게 한 불행한 역사는 더 이상 반복돼서는 안 된다.
세계는 우리 삶을 책임져주지 않는다. “강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지만 약자는 강요된 일을 인내해야 한다”는 투키디데스의 경고는 지정학적 숙명을 안고 있는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한다. 파도에 흔들려도 침몰하지는 않는다. 역경을 딛고 별을 향해 나아가자는 뜻의 라틴어 ‘per aspera ad astra’는 고대 때부터 철학적으로 인내의 중요성을 강조함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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