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소각 의무화 관련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 발의 법안을 보면 자사주의 예외적 보유와 처분 계획 등은 매년 주주총회 승인을 받도록 했다. 또 회사가 신기술 도입, 재무구조 개선 등 회사의 경영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주주총회 특별결의로 정관에 그 사유를 규정하면 자사주를 보유할 수 있도록 했다.상장기업 2660개사 중 자사주를 보유한 곳은 1788개사로 68.6%에 이르고, 중견·중소기업이 88.5%를 차지한다. 따라서 의무소각은 대기업보다 자금력에 여유가 없고 경영권 방어 능력이 없는 중견·중소기업에 더 확실한 영향을 미친다.
본래 자사주 보유와 처분은 현행법상 이사회 결의 사항이다. 이를 주주총회 결의 사항으로 옮긴 조치가 중견·중소기업의 경영을 어렵게 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고려한 결정인지 의문이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가 상장회사 2430개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최대주주와 그 특수관계인 지분만으로는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 1 이상 동의가 필요한 특별결의를 할 수 없는 회사가 808개사나 된다.
808개사 중 630개사(78%)가 코스닥시장 상장회사고, 751개사(90%)가 자산총액 2조원 미만이다. 이 중 411개사는 최대주주 측 지분만으로는 발행주식 총수의 4분의 1 이상을 확보해야 하는 보통결의도 불가능하다. 적어도 411개사는 소액주주 도움 없이는 자사주를 보유할 수 없다는 의미다. 보유한다고 해도 무거운 주주총회 결의까지 해야 한다면 기동성이 떨어져 아무짝에 쓸모없을 수 있다. 경영권 보호 장치가 전무한 현실에서 소액주주 행동주의자들이 기획하고 행동하면 중견·중소기업의 주주총회를 지배하고 이사회를 장악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증명됐다. 지난해 총회 시즌에서 소액주주연대가 바이오 기업 창업주인 최고경영자(CEO)를 쫓아낸 바 있다.
이외에도 자사주의 의무소각은 다양한 부작용을 초래한다. 자사주를 소각하면 자본이 감소한다. 자본 감소 시 채권자 보호 절차를 이행해야 하며, 자본 감소에 반대하는 채권자에게는 채무 변제나 담보를 제공해야 하니, 부채비율이 높은 기업으로서는 난감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나아가 금융회사는 자사주의 과도한 처분으로 자본이 감소하면 면허사업의 일부를 반납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특히 상법 제341조 2에 규정한 바, ‘특정 목적에 의한 자기주식’ 취득의 경우로서 지주회사 설립 및 전환 과정에서 ‘회사의 합병 또는 다른 회사의 영업 전부 양수로 인한 경우’ 등은 조세특례제한법상 양도소득세 및 법인세가 주식 처분 시까지 이연된다. 그런데 자사주를 강제 소각하면 이연한 수천억원의 세금을 한꺼번에 납부해야 한다. 정부 정책에 따라 지주사 체제로의 전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특정 목적에 의한 자기주식’까지 무리하게 소각하라는 것은 정부에 대한 기업의 신뢰를 저버리는 것이다.
모든 부작용을 고려하면 ‘법 시행 이후 취득한 자사주는 취득 즉시 소각한 것으로 본다’고 정하는 게 최선이다. 상법이 시행된 1963년 이후 비교적 자유롭게 취득하고 소각한 자사주를 매우 단기간인 1년 내에 무조건 소각·처분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헌법상 법률 불소급 원칙과 신뢰보호·과잉금지 원칙 위반 가능성이 크다. 법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 소급 적용이 불가피하다면 자사주의 보유, 특히 특정 목적에 의해 취득한 자사주만이라도 총회 결의 없이 보유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다만 기업이 이를 처분하고자 할 때는 총회 결의를 거치도록 하는 것이 그나마 합리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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