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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자로 변한 드로셀마이어…고정관념 부순 호두까기 인형

입력 2025-12-08 18:11   수정 2025-12-09 00:27

드로셀마이어가 검은색 망토를 휘날리며 무대 한가운데로 달려 나온 순간, 여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권위와 마법의 힘이 남성에게만 있는 건 아니라는 점, 발레는 무언극이라는 고정관념이 부서지는 순간이었다. 지난 5일 서울 이화여대 ECC 삼성홀에서 개막한 김용걸발레단의 송년 공연 ‘호두까기 인형: 해설이 있는 명품 발레’(이하 호두까기 인형)는 여성 드로셀마이어에게 아이들의 꿈을 여는 신비한 인도자 역할을 맡겼다. 이 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은 기존 작품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구조와 인물, 무대 연출을 탈바꿈해 신선한 감각을 준다.

김용걸 예술감독은 기존 호두까기 인형의 문법을 크게 세 가지로 바꿨다. 우선 주변부 인물이던 드로셀마이어를 서사의 주체로 키웠다. 원작에서 마법사이자 클라라의 대부로 나오는 드로셀마이어는 호두까기 왕자를 둘러싼 마법과 모험의 발단을 제공한 뒤 비중이 크게 줄어든다. 이번 공연엔 여성 드로셀마이어가 등장해 내레이션을 읊으며 관객의 이해를 돕는 해설자이자 극의 진행자로 나선다. 김 감독은 “‘왜 드로셀마이어는 늘 남성이고, 조력자로만 존재해야 하는가’란 질문에서 이 캐릭터가 출발했다”고 말했다. 그는 “발레가 대사 없는 장르라는 점을 고려하면 처음 발레를 접할 때 다소 어려울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 드로셀마이어가 내레이션을 하도록 구상했다”고 설명했다.

LED 영상을 적극 활용한 건 기존 호두까기 인형에 익숙한 관객들이 김용걸의 ‘호두까기 인형’을 새로운 작품으로 느낄 수 있게 만드는 ‘한 수’다. 흩날리는 눈발, 눈 내리는 숲, 환상의 세계 등 시각적인 전환이 매끄럽게 이어지면서 관객의 몰입을 극대화했다. 1막의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클라라와 호두까기 왕자의 2인무가 오너먼트를 형상화한 LED 구슬 영상을 배경으로 이뤄지는 점은 압권.

수십 명의 발레리나로 꾸미는 ‘눈송이 왈츠’(1막)와 ‘꽃의 왈츠’(2막)는 김용걸의 무대에서는 7인으로 축소되며 더 집중력 있게 그려졌다. 이야기의 주인공 클라라를 프랑스 인형들과 꽃의 왈츠 무리와 함께 등장시킨다. 기존 버전에서 수동적인 위치에 머물던 클라라를 성장과 모험심을 지닌 인물로 조명했다. 공연은 오는 13일까지 이어진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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