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원 어피닛 대표(54·사진)가 2014년 인도에서 핀테크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회의적인 시선이 많았다. 인도 14억 인구 중 은행 대출이나 신용카드를 쓸 수 있는 사람은 고작 1억 명. 나머지는 소득이 있어도 신용 기록이 없어 금융 혜택을 못 받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소득이 낮은 곳에서 금융으로 어떻게 돈을 버냐”며 우려가 쏟아졌다. 하지만 2020년대 이후 인도 대출 시장에서 소액금융 상품 비중은 70%로 확대됐다. ‘길목’을 지키고 있던 어피닛 매출도 2020년 91억원에서 지난해 1460억원으로 16배 급격히 증가했다.이 대표는 8일 서울 테헤란로 어피닛 본사에서 “월 40만~150만원을 버는 인도의 중산층이 10억 명에 달한다”며 “이런 ‘넥스트 빌리언(next billion)’들이 겪는 금융 접근성 문제를 기술로 풀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확신을 현실로 만든 것은 어피닛의 독자적인 ‘대안신용평가 시스템(ACS)’이다. 인공지능(AI) 금융 기업인 어피닛은 동의를 거쳐 사용자의 스마트폰 내 문자메시지, 통화, 앱 설치 목록, 위치정보 등 비금융 데이터 9만여 개를 AI로 분석한다. 예컨대 주식·금융 앱을 많이 쓰는 사람과 게임 앱을 주로 설치한 사람은 연체율에서 차이가 크다. 정기적으로 연락하는 지인이 있는지 알 수 있는 통화 패턴 역시 신용평가에서 꽤 정확한 요소로 쓰인다. AI가 이런 방대한 데이터를 가지고 실제 상환 능력을 정교하게 분석하다 보니 연체율은 인도 동종업계 평균(8~9%)보다 낮은 6%대를 기록하고 있다.
지금까지 어피닛의 누적 대출 취급액은 1300억루피, 우리 돈으로 2조원에 달한다. 이 대표는 “스마트폰으로 5~10분이면 신용평가가 끝나고 대출 가능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며 “20만원 안팎 소액을 빌리는데 전당포에 가거나 보증인을 세워야 했던 인도 고객들에게는 혁신적 경험”이라고 전했다.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한 이 대표는 2000년대 초반 SK텔레콤 자회사 와이더덴에서 컬러링(통화연결음) 솔루션을 해외에 판매하는 사업팀장이었다. 이후 동남아시아에서 부가통신 서비스 회사를 차렸지만 ‘스마트폰 혁명’의 직격탄을 맞았다. 피처폰 관련 시장이 급격히 쪼그라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대표는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아이디어만 있으면 전 세계 소비자와 직접 만날 수 있는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시장이 열린 점에 주목했다. 이 대표는 “인도는 시장의 크기, 성장 속도, 성숙도라는 세 가지 기준에 완벽히 부합하는 나라라고 판단했다”며 “인도의 가장 큰 산업이자, 역설적으로 가장 낙후한 영역인 ‘금융’에서 스마트폰이 만들어낼 가능성은 무한하다고 봤다”고 했다.
어피닛은 인도 금융권에서 완전히 자리 잡았다고 평가받고 있다. 인도에 진출한 국내 주요 금융회사와도 협업을 추진 중이다. 국내 증시 상장도 검토하고 있다. 이 대표는 “AI 기술로 동남아,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의 금융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는 글로벌 핀테크 기업이 되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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