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 1600만 명의 1·2세대 실손의료보험 가입자가 ‘낸 보험료’에서 ‘받은 보험금’을 뺀 차액을 보상받고 기존 계약을 되팔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금융당국이 이르면 내년 상반기부터 이 같은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계약 재매입’을 시행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나서면서다. 필수의료 붕괴, 국민건강보험 재정 악화 등 의료 시스템 왜곡을 부추기는 1·2세대 실손보험 정상화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8일 금융당국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1·2세대 실손보험 가입자를 대상으로 ‘보험료-보험금’ 차액만큼 보상금을 지급하고 계약을 해지하도록 하는 방안을 보험업계에 제시하고 의견 수렴에 들어갔다. 예를 들어 1·2세대 실손보험 가입자가 그동안 보험료 1000만원을 내고 보험금을 300만원 받았다면, 차액인 700만원을 보상받고 계약을 되팔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보험료와 보험금 차액만큼 보상하는 것을 포함해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재매입 가격은 금융당국이 적정 금액을 권고하면 보험사가 이를 따르는 방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계약 매각은 강제 사항이 아니라 소비자 선택 사항이다. 가입자는 기존 계약 유지와 매각 중 본인에게 더 유리한 방안을 선택할 수 있다. 금융당국은 이와 함께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선택형 특약 도입’에도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금융당국 '보험료-보험금 차액 보상' 추진
당국이 이 같은 방안을 추진하는 것은 실손보험이 비급여 시장을 비정상적으로 키워 필수 의료 붕괴, 국민건강보험 재정 악화 등의 문제를 낳고 있어서다. 실손보험으로 비급여 진료 시장이 커지자 의사들은 상대적으로 손쉽게 돈을 버는 비급여 진료 중심의 개원을 선택하고 있다.
문제는 5세대 실손보험을 출시하더라도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실손보험은 출시 시기에 따라 1~4세대로 구분된다. 후기 2세대, 3세대, 4세대 실손보험은 일정 기간 후 재가입하는 조항이 있어 5세대 상품으로 자동으로 갈아타게 된다. 반면 1600만 건에 달하는 1세대와 초기 2세대 실손보험은 재가입 조항이 없어 만기까지 기존 계약을 유지할 수 있다. 2009년 이전에 판매된 1세대 실손보험은 자기부담금이 아예 없거나 매우 적다. 비급여 치료비를 전액 보장해준다는 뜻이다. 아무리 보험금을 많이 받더라도 보험료가 할증되는 것도 아니어서 가입자가 ‘의료 쇼핑’에 나설 유인이 컸다.
일부 가입자의 도덕적 해이로 손해율이 악화하자 보험료가 대폭 인상됐고 다수의 선량한 가입자가 피해를 보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기준 실손의료보험(1~4세대 합산) 위험손해율은 119.3%다. 가입자들에게 보험료 100억원을 받아 119억원가량을 지급했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최근 5년간 보험료 상승률은 평균 53.2%에 달했다.
재매입 가격이 보험료-보험금으로 확정되면 실손보험 이용이 많지 않은 소비자를 중심으로 재구매 수요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1·2세대 실손보험은 본인부담금이 적지만 보험료가 상대적으로 비싼 것이 단점으로 꼽힌다. 40세 남성 기준 1세대와 2세대 상품의 보험료는 각각 월 5만4300원(A보험사 기준), 월 3만3700원 수준이다. 새로 출시되는 5세대 실손보험으로 갈아타면 보험료는 월 1만200원 수준에 불과하다. 의료 이용량이 많지 않다면 계약 재매입에 응해 일정 보상금을 받은 뒤 5세대로 갈아타는 게 유리할 수 있다.
보험업계는 금융당국이 제시한 계약 재매입 요건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보험금을 적게 청구한 우량 고객만 계약 재매입에 응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우량 고객 이탈로 1·2세대 상품 손해율이 급등하면 보험료를 인상해야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사실상 전 국민이 가입하는 실손보험은 금융당국과 협의를 거쳐 보험료 인상률을 정한다. 보험업 감독규정에 따르면 실손보험료는 연 25% 범위에서만 인상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계약 재매입 가격이 보험료-보험금으로 확정되면 최소한 보험료 인상 폭 제한을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형교/박재원/신연수 기자 seogy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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