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연출을 맡기 전에 이미 김유정 배우가 캐스팅이 된 상태였어요."
지난 3일 막을 내린 티빙 오리지널 '친애하는 X'의 연출을 맡은 이응복 감독이 작품 공개 전 진행된 제작발표회에서 한 말이다. 이응복 감독은 KBS 2TV '태양의 후예', tvN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 넷플릭스 '스위트홈' 시리즈 등을 만든 스타 연출자다.
이런 스타 감독보다 먼저 대본에 매료돼 출연을 결정한 이는 주인공 백아진 역의 김유정이었다. 탄탄한 연기력으로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김유정이 선택한 대본의 주인은 신예 최자원 작가다. 최 작가는 2018년 제31회 KBS TV 드라마 단막극 극본 공모 최우수상을 받으며 집필을 시작했지만, 이번 작품이 첫 시리즈 데뷔작이었다. 신인 작가의 대본만 보고 톱배우가 출연을 결심했고, 작품까지 호평 속에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서 방송가에서는 '믿고 보는 작가'가 탄생했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친애하는 X'는 아름다운 얼굴 뒤에 잔혹한 본성을 숨긴 여자, 그리고 그녀를 구원하기 위해 기꺼이 지옥으로 걸어 들어간 남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시청자들에게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최 작가는 캐스팅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의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특히 희대의 소시오패스 백아진 역을 맡은 김유정에 대한 만족감이 컸다. 최 작가는 "김유정 배우는 어릴 때부터 팬이었다"며 "착한 이미지가 강해서 백아진을 어떻게 연기할지 궁금했는데, 정말 잘했다"고 극찬했다.
집필 과정은 치열했다. 2023년 3월 집필을 시작해 그해 겨울 김유정이 캐스팅됐고, 2024년 5월 이응복 감독이 합류했다. 최 작가는 "그래도 빨리 진행된 편이라고 하더라"며 "감독님이 정해지고 의견 조율 과정이 있었지만 프로듀서분들이 잘 정리해주셨고, 각각의 상황을 잘 설명해주셔서 의지하며 작업했다"고 회상했다. 촬영 과정에서도 내용의 큰 수정 없이 초반 설정이 그대로 반영됐다며 감독의 신뢰에 감사를 표했다.
백아진이라는 전무후무한 악녀 캐릭터를 구축하는 과정은 작가에게도 도전이었다. 실제 성격과 전혀 다른 인물을 그려내야 했기 때문이다. 최 작가는 "'작가님'스럽게 말고 '백아진'스럽게 하라는 조언을 들었다"며 "주인공을 전혀 다른 상황에 집어넣고 어떤 리액션을 할지 고민하는데 도저히 답이 안 나올 땐 프로듀서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저도 모르게 '진짜 못됐다' 하면서 글을 썼다"고 고백했다.
가장 우려했던 것은 시청자들이 백아진을 어떻게 받아들일지였다. 그는 "포기하지 않는 선에서, 그럼에도 백아진스럽게 만드는 그 선이 아슬아슬했다"며 "사람들이 '정떨어진다'고 할까 봐 반응을 열심히 찾아봤다"고 했다. 다행히 시청자들은 백아진에게 '망할 년아 망하지 마'라는 애증 섞인 반응을 보였다. 최 작가는 "망해야 하는 게 분명한데 망하지 않았으면 하는 이중적 감정이 있다고 하더라. 1~4부가 나올 때 가장 가슴이 떨렸는데 감독님이 예쁘게 찍어주셔서 감사했다"고 전했다.
원작이 있는 작품인 만큼 각색의 방향성, 특히 결말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 극의 후반부 작업에는 원작자인 반지 작가가 직접 참여해 힘을 보탰다. 최 작가는 "뒷부분의 방향에 대해 고민이 많았는데 원작자님의 도움을 받았다"며 "후반부는 대본도 쓰시고 같이 합의도 하며 들어갔다. 엔딩 지점이나 뒷부분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고 설명했다.
드라마의 결말은 원작과는 달랐지만, 캐릭터에 맞춘 최선의 엔딩이었다는 평이다. 그는 "아진은 누군가의 조력이 있어야 가능했던 인물인데, 재오와 준오가 사라진 후 어떻게 살아갈지, 그 또한 아진에겐 지옥이 아니었나 싶은 엔딩이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2년 9개월 동안 작품과 동고동락했던 그는 호흡이 긴 작업을 처음 소화하다 보니 체력 분배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최 작가는 "영상을 보면서 대본을 쓸 때 어떤 계절이었는지까지 기억이 나더라. 극 중 배경은 겨울이지만 저는 땀 흘리면서 썼던 기억이 스쳤다"며 "보조작가가 친구였는데 '우리 이랬잖아'라고 자꾸 말해서 그만하라고 했을 정도"라고 웃음을 보였다.
방영 기간에는 철저히 시청자의 입장으로 돌아갔다. 그는 "'재밌으려나' 걱정하면서 반응을 확인하며 봤다"며 "방송 전에는 집필 기간에 대해 훅 끝난 것 같은 아쉬움이 있었는데, 끝나고 나서는 글이 영상으로 마무리 지어지는 게 이런 거구나 처음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완결되는 이야기가 집필은 끝났지만 드라마가 끝나는 기분이 만족스러웠다"며 "본인들이 만든 캐릭터 안에서 최후의 결말을 맞는 상황을 만들고 싶었는데 다들 좋게 반응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첫 시리즈를 성공적으로 마쳤지만, 최 작가의 일상은 여전하다. 그는 "제안은 오는데 주변의 시선이 달라지진 않았다"며 "KBS 심사회의에 갔는데 인턴 대하듯 하셨다. 집에서도, 동네에서도 달라진 건 없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면서도 "다음을 이야기하는 회사들이 있어서, 이렇게 한 작품을 써서 다음 새 작품을 하는 것도 처음이라 얼떨떨하다. '작가님'이라는 말이 아직 어색하다"고 했다.
최 작가는 쉴 틈 없이 차기작을 구상 중이다. 그는 "장르물을 준비하고 있다"며 "아직 하나로 결정되진 않았지만 불륜 관련된 소재, 경찰 관련된 이야기, 그리고 판사와 범죄자의 상황이 뒤바뀌는 사회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기획 등을 다양하게 써 놓고 있다"고 귀띔하며 다음 행보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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