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율주행차의 안전은 인공지능(AI)이 아닌 끊기지 않는 신호가 결정합니다."
박상윤 명지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10일 "자율주행차는 이미 주변 환경을 스스로 분석하고 판단할 만큼 정교한 AI 알고리즘을 갖췄지만 여전히 완전 자율주행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며 "그 이유는 센서와 연산 장치가 아무리 뛰어나도, 그 판단 결과가 제어장치로 정확하고 지연 없이 전달되지 못하면 차량은 오작동하거나 멈출 수 있기 때문"이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박 교수는 이러한 '명령과 제어의 끊김 없는 흐름'을 보장하는 통신망과 반도체 구조를 중점적으로 연구해 온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분야 국내 독보적 기술자다. 서울대학교에서 전기컴퓨터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싱가포르 정부 출연 연구기관인 'I2R'(Institute for Infocomm Research)에서 연구원으로 재직, 국제 연구 현장에서 기술적 기반을 확고히 했다.
이후 차량 산업용 통신 분야의 핵심 국가 연구개발 과제를 이끌며, 고신뢰도 차량 내부망(In-Vehicle Network) 설계 분야에서 국내 최고 수준의 전문성을 갖춘 연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차량 내부 통신은 CAN(Controller Area Network)을 기반으로 한다. 구조가 단순하고 신뢰성이 높지만, 단일 경로로 신호가 전달되는 탓에 한 지점의 고장이 차량 전체의 정지로 이어질 수 있다. 반면 변전소나 군함 전투 체계와 같은 안전 필수 시스템에서는 고장 지점이 발생해도 즉시 다른 경로로 신호를 우회시키는 HSR(High-availability Seamless Redundancy) 방식이 사용된다. 그러나 HSR은 데이터를 중복해 전송하기 때문에 트래픽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문제가 있다.
박 교수 연구팀은 이러한 한계를 해결하기 위해 이중화 구조의 장점을 유지하면서도 트래픽 폭증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알고리즘을 다수 제안했다. 그중 대표적인 방식은 국제 표준 IEC 62439-3에 공식 반영되기도 했다. 이 기반 위에 연구팀은 CAN의 실시간 성과 HSR의 무정지 복구 능력을 결합한 새로운 방식인 'Seamless CAN'을 제안했다. 해당 연구는 'Seamless CAN: A Novel Fault-Tolerant Algorithm and Its Modeling'(IEEE Access·2023) 'Comparative Analysis of Traffic-Reduction Techniques for Seamless CAN-Based In-Vehicle Network Systems'(Electronics·2023) 등 SCIE 국제 저널에 연속 게재, 차세대 차량 내부망의 발전 방향을 제시한 것으로 학계 및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박 교수의 연구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통신이 아무리 끊기지 않더라도, 연산을 수행하는 프로세서가 고장으로 멈춘다면 결국 차량은 정지한다. 이에 따라 그는 연구의 초점을 네트워크에서 반도체 아키텍처 내부로 확장했다. 연구팀이 개발 중인 내결함성 프로세서 구조는 두 개의 코어가 동시에 명령을 실행하고 결과를 실시간 비교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연산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면 하드웨어 단에서 고장난 모듈만 선택적으로 배제하고 정보를 계속 처리할 수 있다. '속도 중심 모드'와 '안전 중심 모드'를 상황에 따라 전환하며 시스템을 멈추지 않도록 설계된 구조다.
이 연구가 신뢰를 얻는 이유는 단편적인 결과가 아니라 일관된 연구 축적에 있다. 박 교수는 2016년 스마트그리드용 고가용 이더넷 네트워크 연구를 시작으로, 초저지연 차량 내부 네트워크, 자율주행차용 실시간 중복성 SoC 설계 등 다수의 국가 연구과제를 수행해왔다.
이 과정에서 '에이치에스알 프로토콜을 사용하는 차량 내부 네트워크 및 이의 설계 방법'(등록번호 10-2687375)과 같이 차량 내부망에 HSR 네트워크를 적용하는 핵심 기술을 특허로 확보했다. 또 'Traffic-Effective Architecture for Seamless CAN-based In-Vehicle Network Systems'를 비롯한 후속 연구 성과를 ICTC 2022 국제학회에서 지속적으로 발표하며 연구 기반을 견고히 했다.
박 교수의 연구는 논문 출판과 알고리즘 설계에 머무르지 않고 시뮬레이션, 특허, 반도체 아키텍처 설계, FPGA 기반 검증으로 이어지는 실제 구현 체계까지 포함한다. 이 기술이 자율주행차에만 국한된건 아니다. 물류 로봇, 도심항공교통(UAM), 군수형 무인차량 시스템, 스마트 제조 설비 제어망 등 '멈추지 않아야 하는 시스템' 전반에 적용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평이다.
박 교수는 "미래 모빌리티 경쟁력은 얼마나 빠르게 계산하느냐가 아니라, 고장 상황에서도 시스템이 멈추지 않고 동작할 수 있는가로 결정될 것"이라며 "자율주행의 안전 기준은 AI의 똑똑함이 아니라, 명령이 끊기지 않고 도달하며, 연산이 멈추지 않고 지속되는 구조에 있다"고 강조했다.
고정삼 한경닷컴 기자 js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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