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이퍼스케일러들이 보유한 현금으로 투자, 기업들의 빠른 도입 속도, 닷컴 버블과 달리 스마트폰과 노트북 등 이미 깔려 있는 AI인프라…
BNP파리바가 10일(현지시간) ‘2026 글로벌 투자 전망’ 간담회에서 최근 미국의 인공지능(AI) 투자가 버블이 아니라는 점을 주장하며 든 예시다. 특히 월가에서 30년 경력의 베테랑 기술 섹터 애널리스트로 인정받고 있는 팸 해거티 BNP파리바 리드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이자리에서 “AI 생태계의 상호 연결 구조를 지도를 보듯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어떤 기업들은 사실상 ‘실패하기에는 너무 중요한(too important to fail)’ 위치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몇몇 AI 버블이 시스템 리스크로 번지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해거티 매니저는 1995년부터 기술 분야를 분석해온 베테랑으로, 인터넷 태동기와 닷컴 붕괴의 전 과정을 경험했다. 그는 AI 자본지출(CapEx), 사모 신용 확대, 불투명한 자금조달 구조, 인프라 병목 등 최근 논란의 핵심 이슈들을 구체적으로 짚었다.
해거티는 먼저 AI 분야에서 나타나는 버블 위험을 지적했다. 그는 “AI 인프라 구축 경쟁이 ‘무기 경쟁(arms race)’처럼 전개되고 있다”며 “막대한 CapEx가 단기간에 집중되면서 과잉 구축(overbuild)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투자 대비 수익(ROI)이 아직 불확실하다는 점도 닷컴 시기와 비슷한 구조라는 지적이다.
또한 일부 기업들이 사모 신용, 조인트벤처(JV), SPV 등 기업의 자산·부채가 공식 재무제표에 온전히 반영되지 않는 회계·금융 구조인 오프밸런스(off-balance)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있는 점을 위험 요소로 꼽았다. 그는 “과거 벤더 파이낸싱이 닷컴 붕괴의 불씨가 된 사례가 있다”며 “최근 AI 부문에서도 비슷한 구조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특정 기업이 공급망·수요망을 동시에 연결하는 순환적 의존 구조도 언급했다. 이런 구조에서는 한 기업의 충격이 생태계 전반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매켄지에 따르면 2030년까지 필요한 글로벌 AI 인프라 투자는 6.7조 달러에 달한다. 해거티는 “비슷한 성격의 1996~2001년 미국 통신 인프라 투자(현재 가치 약 1조 달러)의 6~7배 수준”이라며 “이 정도 규모면 버블 우려가 등장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말했다.
해거티는 하지만 버블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현재 빅테크 기업들은 대부분의 CapEx를 부채가 아닌 자체 현금 흐름으로 충당하고 있다”며 “재무구조는 닷컴 시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건전하다”고 설명했다.
기업들의 AI 도입 속도 역시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 중이다. 그는 “AI는 인터넷 이후 가장 근본적인 기술 혁신”이라며 자율주행, 로봇, 산업 자동화, 신약 개발 등으로 확대되는 응용 범위를 제시했다.
또한 “닷컴 시대와 달리 이미 글로벌 인터넷·클라우드 인프라가 구축돼 있다”며 기술 확산 속도 역시 비교 불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챗 GPT는 3년이 채 되지 않아 주간 사용자 8억 명을 확보했다.
밸류에이션 역시 닷컴과 비교하면 온건한 수준이다. 해거티는 “1999~2000년 기술 IPO의 매출 대비 주가(PSR)는 40~50배였지만 최근 IPO 평균은 11배”라고 말했다. MSCI 월드 IT 지수의 포워드 PER은 2000년 60배에서 현재 30배 미만으로 낮아졌다. 포워드 PER은 향후 12개월 예상 이익을 기준으로 산출한 밸류에이션 지표다.
특히 극단적 밸류에이션 사례는 대부분 사모 시장에서 형성되고 있어, 상장기업의 주식시장에 직접적인 충격을 주지 않는다는 분석도 덧붙였다.
해거티는 과도한 투자 속도에 제동을 하는 요인도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AI 데이터센터 구축은 전력·냉각·장비 공급 등 물리적 제약을 크게 받는다”며 “이 병목이 CapEx 사이클을 자연스럽게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해거티는 AI 생태계에는 ‘너무 중요해 실패하기 어려운’ 기업들이 분명 존재한다고 인정했다. 현재로서는 대형 하이퍼스케일러들의 재무구조가 매우 견조한 만큼 단기간에 시스템 리스크로 번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평가했다. 이어 “위험은 존재하지만 지금 단계에서는 개별 부실이 곧바로 시스템 문제로 이어질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특히 일부 비상장 AI 기업의 부채 확대 속도를 엄격히 주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다니엘 모리스 시장전략가는 지수·거시 차원의 관점을 제시했다. 그는 “나스닥 상장 기업들의 CapEx가 크게 늘었지만 애널리스트들이 제시한 2년 후 이익 전망이 과열된 수준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는 2000년 닷컴 버블 당시와 달리 이익 기대치 자체가 비정상적으로 부풀려져 있지 않다는 설명이다. 모리스는 AI 관련 CapEx 증가율이 향후 점진적으로 둔화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현 지표만 놓고 보면 시스템 붕괴 위험이 크게 부각되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신용·채권 담당 패널인 크리스는 “신용시장 측면에서도 시스템 리스크 우려는 제한적”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현재 가장 많은 자금을 집행하고 있는 기업들이 하이퍼스케일러와 초우량 테크기업들로, 레버리지 비율이 낮고 신용등급이 매우 높다고 강조했다. 사모대출 시장도 전체 자본시장 대비 규모가 작고 투자자 구성이 분산돼 있어 위험이 특정 기관에 집중되지 않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뉴욕=박신영 특파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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