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스태프는 ‘이 사람’ 때문에 바짝 긴장했다. 까다롭고 불친절하며 ‘통제가 안 되는’ 감독으로 유명한 데다 자신의 몸집만큼이나 자아가 비대한 그가 개막식 레드 카펫에 서게 됐기 때문이다. 멕시코를 넘어 세계로 뻗어간 감독, 기예르모 델토로 이야기다.
그는 초청 비행기표도 이코노미석으론 절대 불가능한 ‘비싼’ 인싸다. 한마디로 델토로 감독은 과거 프랑스 뤼크 베송 감독만큼 제 멋대로인데 베송은 자신이 만든 아웅산수지 전기영화 ‘더 레이디’ 상영으로 부산에 와서는 무대에서 주연배우 양자경(미셸 여)이 얘기하는 도중에 그냥 나가 버린 사람이다. 팬이 사진을 찍으려고 하자 뚱뚱한 모습이 나오는 게 싫다며 못하게 하기도 했다. 베송은 부산영화제 역사상 최고 진상 감독으로 남아 있는데 이번 델토로 감독도 비슷하지 않을까 걱정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델토로가 장시간의 비행에도 불구하고 지난가을 부산행을 택한 건 야심작 ‘프랑켄슈타인’이 ‘갈라 프레젠테이션’이라는 주요 섹션에 걸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둘째 딸 마리사 델토로가 K팝의 본고장에 오고 싶어 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실제 델토로 감독은 깜짝 스타로 개막식에 온 블랙핑크 리사에게 뜻밖에도 먼저 접근해 딸과 사진을 찍게 하고 사인까지 받게 했다. 이 ‘단 한 컷’으로 델토로의 부산 일정은 순항의 돛을 올렸다. 그가 ‘딸 바보’가 아니었으면 어떤 불만과 짜증을 부렸을지 모를 일이다.
시리즈 영화 중 하나인 ‘블레이드 2’(2002)가 그랬다. 이 시리즈 중에서 뱀파이어 간 변종이 나온 건 이때가 처음인데 리퍼라는 종이다. 입이 빨판처럼 돼 있고 그가 흡혈하는 모양은 참으로 징그럽고 흉측해서 보는 이들의 얼굴을 자연스럽게 찡그리게 한다. 델토로의 상상 속 캐릭터는 스위스 화가 HR 기거가 창조해낸 기괴한 에일리언 이미지에서 포르노그래피를 걷어낸, 그러니까 성적인 느낌을 제거하고 그로테스크한 것만을 가져왔다고 해도 무방할 만큼 충격적이고 파격적이다. 델토로가 할리우드 데뷔작인 ‘미믹’에서 실패한 이유다. 할리우드는 그의 상상력을 통제했으며 괴물(곤충 변이체)의 이미지를 순화시켰다. 영화를 평범한 괴수 공포물로 만들었다.
넷플릭스의 ‘프랑켄슈타인’ 역시 델토로가 평생을 추구해 온 부성 혹은 모성의 실체, 본질에 대한 탐구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텍스트를 이해하기 쉬워진다. ‘프랑켄슈타인’은 제작비 1억2000만달러(약 1800억원)짜리 대작이자 괴작이고 기대한 것 이상으로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그만큼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무엇보다 메리 셸리의 원작과 다른 것은 이해하겠으나 지나치게 자기식으로 바꿔 놨다는 데서 사람들의 호불호가 엇갈렸다. 분명한 것은 이 ‘프랑켄슈타인’이 ‘헬보이’처럼 부성에 대한 델토로 감독의 갈증을 보이고 그 욕망을 확장했다는 것이다. 신이 인간을 창조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자신의 물리학적 아들을 탄생시켰다면 그를 끝까지 보호하거나 챙기는 문제 ‘따위’가 아니라 그 목적성이 분명해야 했다는 것이다.
델토로는 이번 작품에서 노골적으로 살부(殺父) 의식을 선보이며 자신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공개했다. 그건 역설적으로 매우 종교적인 행위인데 그는 무신론자로 알려졌지만, 그렇기에 정신학적으로 인류의 성장을 위해서는 신(아버지)을 죽이는 것이 옳다고 믿는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이번 영화를 통해 그는 아버지, 신을 용서하려는 것처럼 느껴진다. 영화에서 죽어가는 아버지 빅터 프랑켄슈타인(오스카 아이작 분)은 숨이 넘어가기 직전 자기 창조물이자 아들인 크리처(제이컵 엘로디 분)와 극적으로 화해한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거슬렸던 것은 얼기설기 인간 시신으로 만든 크리처가 스스로 진화해 보이밴드 멤버 같은 외모를 지니게 된다는 점이다. 프랑켄슈타인은 얼굴에 꿰맨 자국이 있을 때, 그 본질과 본성에 대한 이해가 쉬운 법. 이번 크리처는 42개의 인공 피부 조각을 ‘직소 퍼즐처럼’ 짜 맞추는 방식으로 특수분장됐다.
아버지 대신 그가 찾는 사람은 엄마다. 델토로의 숨겨진 걸작으로 그가 연출이 아닌 프로듀서를 맡은 영화 ‘마마’(2012)가 바로 그런 얘기다. 감독은 아르헨티나의 앤디 무시에티가 맡았다. 숲속에 유기됐던 아이 둘을 삼촌 루카스가 기적적으로 찾게 되고 그의 여자친구 애너벨은 이 자매를 자신의 아이로 입양한다. 그러나 밤마다 집에 귀신이 나타난다. 이 귀신은 자매의 친엄마다. 엄마 귀신은 무서운 모습이 돼 아이들을 잡아가려 한다. 영화는 엄마라는 존재는 귀신이 돼서도 아이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버리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신작 ‘프랑켄슈타인’에서 프로덕션 미술이 ‘한가락’ 한다며 찬사를 이어가지만 사실 그건 델토로에게는 식은 죽 먹기다. 그는 이제껏 그렇게 해왔다. 색채감에 있어서라면 델토로의 필모그래피 중 ‘크림슨 피크’를 따라갈 작품은 없다. 붉은 피의 색감이 정점을 이룬다. 여주인공이 남자와 처음으로 잔 날 침대에 묻은 피 색깔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질주한다. ‘크림슨 피크’는 인간의 강박증과 편집증이 불러오는 공포를 보여주고 그 광기의 본질을 그려낸다. 사기꾼 남매의 누나인 루실은 근친 욕망의 대상이자 동생인 토마스가 이디스와 진짜 사랑에 빠지자 폭주하기 시작한다. 루실은 한때 토마스의 아이를 낳기까지 했던 여자다. 루실의 광기는 핏빛 살인극으로 이어진다. 영화가 궁극적으로 색의 예술이며 색감이 주는 영감으로 서사의 아우라를 압도할 수 있음을 보여준 작품이다.
이번 작품 ‘프랑켄슈타인’은 전작들에 비해 과다한 제작비를 들여 감독의 과다한 욕망이 범벅된 작품이다. 델토로는 향후 스무 편은 더 만들 것이다. 그의 영화는 ‘판의 미로: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나 ‘셰이프 오브 워터’처럼 재미와 의미 두 마리 토끼를 쫓을 때 빛을 발한다. 사람들은 이번 영화로 실망했지만 그를 계속 좋아하고 추앙할 것이다. 왜냐고? 기예르모 델토로이기 때문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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