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열도를 휩쓸고 영국 웨스트엔드까지 사로잡은 화제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마침내 한국에 상륙한다. 일본 애니메이션에 관심 없는 사람도 한 번쯤 들어봤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동명 영화가 원작. 일본 공연 제작사 도호가 2022년 연극으로 제작한 무대를 그대로 옮긴 오리지널 프로덕션이 한국을 찾는다.
작품은 가족과 함께 새집으로 이사하던 중 우연히 금지된 신들의 세계에 발을 들인 소녀 치히로의 신비로운 모험을 다룬다. 치히로의 부모가 신들의 음식을 함부로 먹다가 돼지로 변해버린 사이, 홀로 남겨진 치히로는 신들이 드나드는 온천에서 일하며 낯선 세계에 적응해나간다.
이번 공연의 관전 포인트는 하야오 감독이 그려낸 영화 속 독특한 세계관을 무대 언어로 어떻게 풀어내는지다. 얼굴 없는 요괴 ‘가오나시’, 치히로의 든든한 조력자 ‘하쿠’가 용으로 변하는 모습 등이 퍼핏의 움직임으로 정교하게 표현된다. 여기에 영화음악의 거장 히사이시 조가 작곡한 오리지널 음악이 11인조 오케스트라의 라이브 연주로 더해지며 지브리 특유의 아날로그 감성과 서정성을 극장 안에 가득 채운다.

캐스팅도 화려하다. 2022년 도쿄 초연부터 지난해 런던 웨스트엔드 개막까지 치히로 역으로 꾸준히 무대에 오른 가미시라이시 모네가 한국을 찾는다. 영화와 애니메이션 성우 활동을 넘나들며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준 그는 순수함과 강단을 동시에 지닌 치히로의 성장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이돌 그룹 AKB48 활동 이후 드라마와 영화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는 가와에이 리나도 또 다른 치히로 역으로 이름을 올렸다.
신들의 세계에서 온천을 운영하는 ‘유바바’와 유바바의 쌍둥이 언니 ‘제니바’ 역에는 나쓰키 마리와 하노 아키, 다카하시 히토미가 출연한다. 나쓰키 마리는 원작 영화에서 같은 배역의 목소리를 맡은 바 있어 더욱 기대를 모은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연출 존 케어드가 이번 작품을 맡았다.
공연은 1월 7일부터 3월 22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다. 약 3개월간 이어지지만, 티케팅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울 전망이다. 이미 1차 티켓 오픈과 동시에 1월 18일까지 약 3만 석이 전석 매진되며 흥행을 예고하고 있다.

라이브로 만나는 ‘Let It Go’
오는 8월에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겨울왕국>이 뮤지컬로 찾아온다. 주인공 ‘엘사’와 ‘안나’의 드레스가 없어서 못 팔 정도로 돌풍을 일으킨 바로 그 <겨울왕국>이 ‘프로즌Frozen’이라는 이름으로 막을 올린다.
작품은 만지는 모든 것을 얼음으로 만드는 힘을 타고난 아렌델 왕국의 공주 엘사와 그의 여동생 안나의 이야기를 그린다. 어느 날 초능력을 제어하지 못한 엘사가 왕국 전체를 얼어붙게 만들고, 안나는 산으로 도망친 언니를 찾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프로즌>의 가장 큰 볼거리는 스크린 속 판타지가 무대 위에서 현실화하는 장면이다. 조명, 영상, 특수 효과 등을 결합해 눈과 얼음이 순식간에 생성되고, 웅장한 얼음 궁전은 라이브 공연만의 스펙터클을 선사한다. 말하는 눈사람 ‘올라프’, 순록 ‘스벤’ 등 인간이 아닌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는 퍼핏의 생동감 넘치는 움직임도 빼놓을 수 없다. 무엇보다 차가운 설원과 빛나는 얼음 세계로 변하는 순간 울려 퍼지는 이 작품의 대표적 음악 ‘Let it go’를 라이브로 듣는 경험은 뮤지컬 <위키드>의 ‘Defying gravity’에 견줄 만큼 황홀한 순간이 될 듯하다.
해외에선 무대화된 <프로즌>에 엇갈린 평가를 한 바 있다. 2018년 <뉴욕 타임스>는 이 작품이 “약간의 마법과 몇몇 얼음 패치를 가지고 브로드웨이에 올랐다”고 평하며 다소 아쉬운 의견을 보냈다. 반면 2023년 영국 <텔레그래프>는 웨스트엔드 공연을 두고 “웨스트엔드에서 펼쳐지는 가장 마법 같은 무대”라고 극찬했다. 서울 샤롯데씨어터와 부산 드림씨어터에서 펼쳐질 한국 초연 무대는 어떤 평가를 이끌어낼지 직접 확인해볼 차례다.

2000년대를 주름잡던 미국 팝스타 얼리샤 키스의 노래를 엮은 주크박스 뮤지컬 <헬스키친>도 향수를 자극한다. 오는 7월 개막할 예정인 이 작품은 지난해 4월 브로드웨이에서 첫선을 보인 따끈따끈한 신작이다. 그래미 어워즈에서만 17번 수상한 전설적인 R&B 싱어송라이터 얼리샤 키스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성장 드라마다.
배경은 1990년대 뉴욕 헬스키친 지역. 음악에 남다른 재능을 지닌 17세 소녀 알리가 주인공이다. 엄격한 어머니의 보호 아래 억눌린 삶을 살던 알리는 거리의 자유로운 에너지와 음악을 통해 점차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간다.
‘If I ain’t got you’, ‘Fallin’, ‘Girl on fire’ 등 얼리샤 키스의 히트곡을 엮어 화려한 성공담보다 불안정하던 청춘의 순간에 초점을 맞춘다. 스트리트 댄스와 힙합, 재즈, 클래식 등 다양한 음악이 한데 어우러진 꽉 찬 무대가 펼쳐질 예정이다.
신선함 내세운 한국 창작 뮤지컬
뮤지컬 <몽유도원>도 기대작으로 손꼽힌다. 원작은 도미와 도미의 아내 아랑, 그리고 아랑을 탐하는 왕 여경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최인호 작가의 소설 <몽유도원도>. 뮤지컬 <명성황후>를 만든 윤호진이 연출을 맡아 인간의 뒤틀린 욕망과 권력에 맞선 사랑의 절개를 한 폭의 수묵화처럼 풀어낼 예정이다. 최근 <한복 입은 남자>, <청사초롱 불 밝혀라> 등 한국의 전통과 역사를 반영한 뮤지컬이 무대 위로 속속 오르는 흐름 속에서 이 작품도 새로운 K-뮤지컬의 가능성을 만들어낼지 주목된다.
여경 역은 배우 민우혁과 김주택, 도미 역은 이충주와 김성식이 맡았다. 아랑 역은 하윤주와 유리아가 연기한다. 하윤주는 국가무형문화재 가곡歌曲 이수자이자 전통 성악인 정가의 보컬리스트다. 공연은 1월 27일부터 2월 22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초연한 뒤 샤롯데씨어터로 옮겨 4월까지 이어진다.
<유미의 세포들>도 스크린 밖으로 튀어나온다. 인기 웹툰으로 시작해 드라마로 시청자를 사로잡은 <유미의 세포들>이 이번에는 무대 위로 오르는 것.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오는 6월 개막한다.
이번 작품은 주인공 ‘유미’의 서사보다 ‘세포’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사랑 세포, 응큼 세포, 출출 세포 등 유미의 수많은 세포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 톡톡 튀는 매력을 발산할지 벌써부터 팬들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총연출을 맡은 양정웅이 제작한다.
이미 검증된 대작들도 무대에 오른다. <오페라의 유령>, <서편제>, <빌리 엘리어트>, <안나 카레니나>, <베토벤> 등 각기 다른 시대와 정서를 품은 작품들이 다시 한번 관객의 선택을 기다린다.
허세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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