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무심코 느끼는 편안함 속 치밀하게 계산된 조경의 배려 오늘 걸은 바닥의 재질이 몇 가지였는지 한번 생각해보자. 아스팔트, 대리석, 보도블록, 마루… 아마 열 가지 이상 떠올리기 힘들 것이다. 반면 홍대입구역에서 나와 경의선숲길로 간다고 상상해보자. 흙길과 나무 데크, 철로의 침목과 자갈 도상… 오 분만 걸어도 열 가지 이상의 촉감을 느낄 수 있다.
도시인이 상실하기 쉬운 감각의 경험을 되찾게 해주는 것, 계절의 변화를 느끼게 하고 숨 쉴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이 조경이다.
왠지 발길이 이끌리는 곳, 무의식적으로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에는 섬세하지만 치밀하게 설계된 조경의 배려가 있다.
고려대학교 환경생태공학부·생태조경융합전공 전진형 교수는 신간 '조경, 가까운 자연(21세기북스)'을 통해 나무 심고 정원 가꾸는 일 정도에 머물러 있는 조경에 대한 인식을 바꿔준다.
고령화가 심화하며 국가적 의료비 부담이 커지는 현대 사회에서는 걷고 싶은 거리를 더 많이 조성하고 노약자도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설계를 하는 것이 우선이다. 사람들을 자가용에서 내리게 하고 걷게 만들어 생활 속 운동량을 늘리면 병원을 찾는 사람이 줄고 공공보건 비용이 감소한다. 이것이 조경가의 문제 해결법이다.

이처럼 조경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흔히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를 접하게 된다. '남산이 아껴주는 서울의 에어컨 요금은 얼마일까', '강남은 매번 침수되지만 광화문은 침수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북촌이 예전만큼 핫플이 아닌 이유가 뭘까'등 도시 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조경가의 입장에서 풀어낸 도시 해석은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올 것이다.
정 교수는 경주와 로마의 조경을 비교하며 두 도시가 역사를 대하는 태도의 차이를 인문학적으로 풀어내기도 하고, 오늘날 대단지 아파트의 조경을 분석하여 전체 공사비 대비 조경비가 높은, 조경 수준이 높은 아파트가 대장 아파트일 가능성이 높다는 흥미로운 의견도 전한다. 또한 한 마리의 새를 따라가며 서울 전체의 생태 네트워크에 대해 점검하며 우리 도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 또한 놓치지 않는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