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제1차 에너지저장장치(ESS) 입찰(ESS 중앙계약시장) 결과가 발표된 지난 7월 SK온은 침울했다. 공격적인 영업에도 전남 전북 경북 강원 제주 등에서 단 한 곳도 수주하지 못해서다. 국내 생산 기반이 없다는 점이 입찰 실패의 가장 큰 요인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SK온은 바뀌기 시작했다. 투자 없이는 ‘승리’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다. SK온이 에이스급 인재를 ESS 분야에 이동 배치하는 등의 조직 개편을 하고, 국내에 최대 규모 ESS용 배터리 시설을 짓기로 한 이유다.기후에너지환경부는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연평균 10GW씩 늘려 2038년까지 138GWh의 ESS를 설치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누적 사업 규모는 20조~3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SK온은 초기 입찰 물량을 다수 확보해 실적을 쌓는다면 10년 이상 안정적인 내수를 확보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SK온은 서산 LFP 배터리 공장을 ESS 신제품과 신공정을 개발하는 마더팩토리로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국내에서 새로운 제품과 공정을 먼저 개발해 수율(생산품 중 양품 비율)을 안정화한 뒤 이를 해외 공장에 그대로 이식하는 전략이다. 특히 배터리는 배터리업체와 소부장(소재·부품·장비) 회사가 긴밀하게 협업해야 하는데, 한국은 이런 밸류체인이 갖춰져 있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정부 ESS 입찰을 따낸다는 것은 안정적인 내수를 확보하는 동시에 ESS 분야에서 마더팩토리를 원활히 운영할 수 있다는 의미”라며 “입찰에서 앞서는 기업이 ESS 배터리 신제품을 개발하고 상용화하는 데 우위에 설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입찰에선 경쟁사들도 국내 ESS 배터리 생산 기반을 확보하겠다고 나서면서 삼성SDI가 더 이상 국내 생산이라는 차별화 요소를 독점하기 어려워졌다. 가격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으로 관측되는데 원가가 비싼 삼원계 배터리로 대응한다는 점도 부담이다. LFP 배터리로의 포트폴리오 전환이 필연적이란 의미다. 이에 따라 삼성SDI도 국내에 LFP 기반 ESS 생산 체제를 갖출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배터리 3사 중 가장 먼저 국내에 연간 1GWh 규모의 LFP ESS 라인 확보를 결정한 LG에너지솔루션도 셈법이 복잡해졌다. 지난달만 해도 1GWh 규모가 국내 최대였는데 SK온이 대규모 증설에 나서면서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1GWh는 초기 물량과 마더팩토리 역할을 고려해 결정한 초기 규모”라며 “시장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할 계획”이라고 했다.
업계는 국내 배터리업체 간 경쟁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배터리 3사 모두 전기자동차 시장이 확연히 살아나지 않는 가운데 ESS가 당분간 회사의 실적을 개선시킬 것으로 보고 있어서다. 국내 공장이 성장 가능성이 높은 ESS 시장의 ‘출발선’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업체들의 국내 시장 경쟁은 해외보다 더 치열하다”며 “SK온이 새로운 카드를 던진 만큼 다른 업체들도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성상훈/안시욱 기자 uph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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