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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입시는 지나가고 관계는 남는다

입력 2025-12-14 18:01   수정 2025-12-15 00:12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약 55만4000명이 응시했다. 그중 재수생을 포함한 n수생 비중은 30%에 달한다. 수험생 3명 중 1명은 이미 ‘반복 도전’을 선택했다는 의미다. 한 명의 수험생 뒤에는 가족의 시간과 감정이 함께 달려 있다. 그 시간은 길고 치열했으며, 간절했다.

“우리 딸은 OO대 수시 합격했어요.”

“아들은 떨어졌어요…. 요즘 말이 없네요.”

입시 시즌이 되면 이런 대화가 익숙하게 들려온다. 누군가는 기뻐하고, 누군가는 침묵한다. 그 감정은 한 개인을 넘어 가족 전체의 분위기까지 바꾼다. 때로는 축하도, 위로도 상처가 될 수 있다. 입시 결과는 개인 노력의 일시적 평가에 불과하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성과 중심이다. 부모 단톡방은 합격 소식으로 들썩인다. 반면 탈락 소식은 침묵 속에 묻힌다.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못한다. 탈락한 학생은 자신을 ‘실패자’로 규정하고, 부모는 아이에게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막막하다. 조심스레 건넨 위로조차 부담이 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결과 편향’이라고 부른다. 결정의 질을 당시 정보나 맥락이 아니라 결과만으로 평가하는 인지적 오류다. 결과가 좋으면 모든 과정이 옳았던 것처럼, 결과가 나쁘면 잘못된 결정처럼 여기는 편향이다. 입시 같은 고위험 상황에서 이 오류는 더욱 강력하게 작동한다.

한 사회의 성숙도는 결과를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결과를 부정하고 싶을 때, 그 속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감정이 숨어 있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조언이 아니라 공감이다. “수고했어” “많이 힘들었지?” 같은 말이 진심으로 전해질 때 비로소 마음이 움직인다. 합격한 이에겐 축하를, 탈락한 이에겐 응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어떤 말보다 중요한 건 말을 꺼내는 사람의 태도와 시선이다. “다음엔 되겠지”라는 말보다 “지금 어떤 마음이니?”라는 질문이 더 위로된다. 괜한 충고보다 묵묵히 곁에 있어 주는 자세가 진심을 전한다. 말이 아니라 존재 자체로 위로가 될 수 있다. 곁에 있어 준다는 것, 그 자체가 메시지다.

가족 안에도 정서적 계약이 필요하다. 결과와 상관없이 서로를 지지하겠다는 약속이다. “네가 어떤 대학에 가든, 우리는 너를 응원해”라는 말을 입시 전에 나누는 것만으로도 심리적 안전망이 만들어진다. 이 약속은 합격 발표 이후에도 유효해야 한다. 결과가 나온 뒤에야 비로소 그 진심이 시험받는다. 자녀는 부모의 기대를 채우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긴 시간을 견디며 자신을 이겨낸 사람이다. 그 과정에서 배운 인내와 성실함은 어떤 대학 간판보다 귀한 자산이다.

실리콘밸리 같은 혁신 사회에서는 실패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도전 자체를 의미 있게 본다. 빨리 실패하고 더 빨리 배우는 것이 성장의 자양분이 된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서 보인 태도와 회복 탄력성이 핵심 역량으로 인정받는다. 우리 사회도 이제 변화가 필요하다. 한 번의 입시 결과가 인생을 결정짓는다는 믿음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녀가 합격했든 탈락했든, 지난 한 해 동안 보여준 성실함과 끈기는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그 노력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교육이고 사랑이다.

부모들도 애썼다. 자녀의 성공과 실패가 곧 자기 일처럼 느껴지는 시간을 견뎌냈다. 그 마음도 충분히 힘들었을 것이다. 이제는 자녀뿐 아니라 부모 자신에게도 “수고했다”고 말해줄 때다. 입시는 끝났지만 관계는 계속된다. 이 연말, 우리는 어떤 말로 서로를 기억하게 될까. ‘결과’보다 ‘마음’을 먼저 들여다볼 시간이다. 우리는 오늘,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떤 질문을 건넸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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