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와 삼성전기, LG이노텍, SKC 등 정보기술(IT) 부품 업체들이 차세대 반도체 산업의 게임체인저로 불리는 ‘유리기판’ 사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조직 개편과 인력 보강으로 사업 경쟁력을 높이고 해외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선제적 기술 확보에 나선 게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유망 스타트업 투자를 통해 기술력을 높이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15일 산업계에 따르면 삼성은 올 들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체들과 협력해 유리기판을 활용한 패키징 서비스에 집중하고 있다. 삼성전기는 이르면 내년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세종공장에서 유리기판을 개발하고 있고, 삼성전자는 2028년 상용화를 목표로 기존 실리콘 인터포저를 ‘유리 인터포저’로 대체하는 기술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다. 유리기판은 플라스틱 기판보다 열에 강해 잘 휘어지지 않는 데다 표면이 매끄러워 초미세 회로를 그리는 데 적합하다. 데이터 전송 속도를 대폭 높일 수 있고 전력 효율이 30% 이상 향상돼 열이 많이 나는 인공지능(AI) 반도체에 딱 맞는 기판이란 평가를 받는다.삼성전자는 최근 투자 전문 삼성 계열사인 삼성벤처투자를 통해 국내 첨단 반도체 소재 기업 JWMT(옛 중우엠텍)에 투자해 일부 지분을 확보했다. 2002년 설립된 JWMT는 유리기판 제조 분야 강자로 꼽힌다. 유리기판 제조의 핵심은 깨지기 쉬운 유리에 미세한 구멍을 수만 개 뚫은 뒤 전기를 통하게 하는 것이다. JWMT는 유리에 직접 구멍을 뚫는 대신 레이저로 유리의 물성만 바꾼 뒤 화학 약품으로 녹여내는 기술인 ‘LMCE’를 확보했다. 아울러 도금까지 일괄 처리하는 턴키 솔루션 능력도 갖췄다.
삼성전기는 핵심 인력·조직을 보강하고 양산 체제를 구축하며 유리기판 사업에 힘을 주고 있다. 삼성전기는 최근 임원 인사에서 반도체 기판을 담당하는 패키지솔루션 사업부장에 주혁 중앙연구소장(부사장)을 선임했다. 주 부사장은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 SAIT(옛 삼성종합기술원) 등을 두루 거친 뒤 지난해 말 삼성전기로 자리를 옮겨 올해 반도체 유리기판 연구개발(R&D)을 이끌었다. 이번 인사는 유리기판 등 차세대 기판 사업 육성에 더욱 힘을 싣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지난달엔 일본 스미토모화학그룹과 유리기판의 핵심 소재인 ‘글라스 코어’ 제조를 위한 합작법인(JV) 설립 양해각서(MOU)도 체결했다.
SKC의 자회사 앱솔릭스도 유리기판 사업에 적극적이다. 앱솔릭스는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 중인 공장에서 미국 AMD에 납품할 제품의 품질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지난 4일 인사에선 인텔 출신 강지호 SK하이닉스 부사장이 신임 대표로 선임됐다. 강 대표는 인텔에서 15년간 반도체 산업 관련 기술·운영 경험을 쌓고 이후 SK하이닉스에서 C&C(클리닝&CMP 공정) 기술을 담당했다.
LG이노텍은 작년 3월 주주총회에서 유리기판 사업 진출을 공식화하고, 최고기술책임자(CTO) 산하 R&D 조직에서 개발을 한창 진행 중이다. 이미 시제품을 위한 설비도 R&D 센터 내에 구축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혁수 LG이노텍 대표는 올해 3월 기자들과 만나 “올해 말 유리기판 시제품 생산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으며, 글로벌 고객사 대상 프로모션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일본 이비덴과 DNP 등도 유리기판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TBRC에 따르면 글로벌 유리기판 시장은 연간 6.6%씩 성장해 작년 79억달러에서 2029년 108억5000만달러까지 커진다. 업계 관계자는 “유리기판은 AI 반도체 패키징 시장의 판도도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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