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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AI 거품론 불식시키려면

입력 2025-12-15 17:34   수정 2025-12-16 00:48

주세로는 2013년 실리콘밸리에 혜성같이 등장했다. 커피머신처럼 과일·채소가 담긴 팩을 넣으면 곧바로 음료를 내려주는 ‘스마트 주스 착즙기’로 구글, 캠벨 등 대기업과 벤처캐피털(VC)로부터 막대한 투자를 이끌어냈다. 4t의 강한 압력으로 착즙이 가능하고, QR코드로 유통기한을 확인할 수 있다는 첨단 기능을 앞세운 주세로의 유혹에 투자자들은 1억1800만달러(약 1740억원)를 기꺼이 투자했다.

승승장구하던 주세로는 간단한 질문 하나에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왜 기계로 팩을 짜야 할까’. 블룸버그통신이 주세로 팩을 손으로 뜯어 짜는 영상을 공개하면서 699달러짜리 착즙기는 초고성능 쓰레기로 전락했다. 회사는 2017년 파산했다.
실패한 4t 압력 착즙기
요즘 인공지능(AI) 에이전트 시장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AI에이전트의 의미는 사용자를 대신해 ‘독립적으로 작업을 수행하는 AI’다. 많은 스타트업이 AI에이전트를 통해 인간 직원을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AI 챗봇과 AI에이전트가 무엇이 다른지 질문하면 두루뭉술한 답변을 내놓는 경우가 많다.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형태로 AI에이전트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기업 상당수가 상담용 챗봇을 AI에이전트로 포장하기도 한다.

미국 테크 전문매체 와이어드의 기자 에번 래틀리프는 AI에이전트의 환상을 보여주기 위해 직접 ‘후루모AI’라는 스타트업을 세웠다. 그는 이메일, 슬랙, 전화 등을 할 수 있는 5명의 AI에이전트 직원을 활용해 창업에 나선 스토리를 기사에 실었다. 이에 따르면 AI 직원들은 회사의 진행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시의적절하게 보고했다. “모바일 성능이 40% 향상됐습니다” “수천만달러 매출이 발생했습니다” 같은 보고를 수시로 해줬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 일도 없었다. AI에이전트가 래틀리프에게 보고한 내용은 스타트업 창업자들의 스토리를 학습한 환각에 불과했다.
과잉기술의 실수 반복하지 말아야
모든 AI에이전트가 사기극인 것은 아니다. 각종 연구·사무 현장에서 요구되는 단순노동을 AI에이전트들이 성공적으로 대체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현재 AI 모델로는 실제 AI에이전트를 구현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사전학습 결과에 기반해 확률적으로 가장 적합한 대안을 내놓는 ‘트랜스포머 모델’에 기반하고 있어서다. 사람처럼 상황을 인식하고, 스스로 추론과 결정을 할 수 있는 모델이 나올 때까지 AI에이전트의 역할은 한정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데이터 플랫폼 피치북에 따르면 지난 3분기 전 세계 스타트업 투자의 53%가 AI 분야에서 이뤄졌다. “AI가 세계 경제 규모를 다섯 배 키울 것”이라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말처럼 AI가 세상을 바꿀 기술로 평가받으면서 막대한 자금이 몰리고 있다. 동시에 과잉 투자 논란도 제기된다. 간단한 문제를 복잡하게 접근한 주세로처럼 ‘과잉 기술’ 스타트업들이 AI라는 큰 흐름에 섞여 투자자를 현혹한다는 얘기다. 최근 실리콘밸리에서 만난 한 VC 대표는 창업자들을 만나면 “이게 진짜 AI에이전트가 필요한 일인가요”라고 묻는다고 한다. AI 투자가 거품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이런 질문이 많아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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