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주권정부는 내년 집권 2년 차에 접어든다. 대통령실 출입기자단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6개월간의 외교·안보 성과로 한·미 관세협상 타결, 외교 정상화, 핵추진잠수함 도입 합의 그리고 2025년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를 꼽았다. 대통령의 외교·안보 분야 경험을 둘러싼 일각의 우려와 논란은 가시적인 성과를 계기로 상당 부분 해소됐다는 평가가 나온다.비상계엄과 탄핵에 따른 ‘기저효과’ 측면도 있지만 동맹 현안의 주도권을 내준 보수 진영 내부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뒤따랐다. 외교·안보 부처 안팎에서는 주요 현안에서 대통령의 개인적 외교 역량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한 이재명 정부가 국정 목표로 제시한 ‘국익 중심의 외교안보’를 비교적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다가오는 병오년, ‘붉은 말의 해’는 한국의 외교안보에 무한도전의 한 해가 될 전망이다. 2026년 세계 경제는 저성장 국면이 이어질 것으로 보이며, 국제통화기금(IMF) 등 글로벌 컨센서스는 내년도 경제성장률을 3% 안팎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팬데믹 이전 평균을 밑도는 수준이다. 저성장 배경에는 구조적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각국이 산업 보호와 공급망 재편에 나서면서 세계 경제는 시장 논리보다 지정학 변수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한국 경제도 이런 흐름에서 예외가 아니다. 2026년 성장률 전망치는 2% 안팎으로, 잠재성장률을 하회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여기에 미국 국제통상법원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한 관세 조치의 권한 범위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은 또 다른 리스크로 부상하고 있다.
세계 질서는 지정학적 대변동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가 전쟁 종식의 큰 틀을 놓고 접점을 모색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안한 ‘평화 프레임워크’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집권 이후 ‘미국 건국 250주년 기념’을 주제로 한 행정명령 14189호에 서명하고, 자신의 얼굴이 새겨진 기념주화를 발행하는 등 다양한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건국 250주년의 성공적 기념과 중간선거 승리, 나아가 노벨평화상 수상까지 염두에 둔다면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은 ‘트럼프 레거시’를 완성하는 데 필수 조건이다. 하지만 전쟁의 종결이 곧 평화의 도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포스트 우크라이나 전쟁 시대는 규칙 기반 질서의 약화와 함께 세력권 질서의 본격화를 예고하기 때문이다. 보편적 가치보다 힘의 논리가, 국제 규범보다 강대국 간 합의가 질서를 규정하는 시대로의 이행이다.
트럼프 2기 국가안보전략(NSS)은 이런 변화를 비교적 선명하게 보여준다. 미국은 보편 질서의 수호자라는 국가 정체성을 포기하는 대신 좁은 이익을 추구하는 보통의 강대국 역할을 선호한다. 이에 따라 동맹 관계의 기준과 구조 역시 변화가 불가피하다. 미국의 사활적 이익에 얼마나 실질적으로 기여하는지가 동맹 관계를 규정하는 핵심 잣대가 될 전망이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주요 7개국(G7)을 대체할 C5 체제를 구상한다는 소식 또한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적대와 대결의 종식, 평화공존과 공동 성장을 목표로 ‘END 구상’을 추진하는 한국 입장에서는 세력권 질서로의 전환이 상당한 부담 요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만남에 의지를 보이고는 있지만, 북한 문제가 미국의 핵심 이익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한국의 주도적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 11일 기획재정부를 시작으로 ‘유리창 업무보고’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주에는 국방부와 외교부 등 외교·안보 부처의 합동 업무보고가 예정돼 있다. 복합 위기를 극복하는 근본적인 힘은 공직사회의 집단지성과 창의성, 그리고 정책 추진 속도에 달려 있다. 국민주권정부의 이번 업무보고가 무한도전의 시대를 돌파할 외교·안보 정책 비전을 제시하고, 공직사회를 하나로 묶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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