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이 수년간 지속된 출산율 하락으로 본격적인 인구 감소 위기에 직면했다. 유럽연합(EU)은 내년 인구가 정점을 찍은 후, 14세기 흑사병 이후 처음으로 지속적인 인구 감소세에 들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13일(현지 시각) 워싱턴포스트(WP)는 “유럽의 인구 감소는 노동력 축소와 경제 시스템 붕괴 가능성에 대한 우려 키우고 있다”며 “각국 정부가 각종 혜택과 인센티브 등을 통해 출산 반등을 유도하려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유럽 대부분 국가의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하는 평균 출생아 수)은 2.1명 이상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이후 동유럽과 지중해 연안 국가를 중심으로 출산율이 급격하게 하락했고, 현재는 지역 격차 없이 전반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EU 27개 회원국 가운데 합계출산율이 1.5명을 넘는 국가는 5개국에 불과하며, 1.9명을 넘는 국가는 단 한 곳도 없다. EU 평균 출산율은 여성 1인당 1.38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고령화 속도도 가파르다. 30년 전만 해도 서유럽에서는 65세 미만 성인 4명이 65세 이상 노인 1명을 부양했지만, 현재는 그 비율이 약 3대 1로 줄었다. 유엔은 이 비율이 2050년에는 2대 1 미만으로 떨어지고, 2100년에는 85세 인구가 5세 인구보다 많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따라 유럽 각국은 공격적인 출산 장려 정책을 잇달아 도입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자녀가 둘 이상인 워킹맘에게 보너스를 지급하고 있으며, 폴란드는 지난해 자녀 1인당 월 220달러의 가족 지원금을 인상했다. 지난 10월에는 자녀가 둘 이상인 부모에게 대규모 세금 감면 혜택을 제공하는 법안도 통과시켰다.
헝가리는 국내총생산(GDP)의 5%를 가족 정책에 투입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국방비 지출 비율보다 높은 수치다. 헝가리 정부는 조부모 휴가 제도를 도입하고, 가족 계획을 세운 부부에게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낮춰준다. 자녀가 셋 이상인 가정에는 약 3만 달러의 대출 상환 면제 혜택도 제공한다. 올해 10월부터는 자녀가 셋인 모든 여성에게 평생 개인소득세 면제를 적용했고, 내년에는 자녀가 둘인 40세 미만 여성으로 대상이 확대된다.
그러나 정책 효과는 제한적이다. 헝가리는 가족 정책 강화 이후 출산율이 2011년 1.25명에서 2021년 1.61명까지 반등했지만, 2023년에는 다시 1.39명으로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출산율 하락의 배경이 단순한 경제적 문제를 넘어선다고 지적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24 사회지표 보고서에서 “주택 가격과 생활비 급등, 여성의 교육 수준 및 고용 전망 개선으로 인해 자녀 양육의 기회비용이 크게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물리적 제약과 인식 변화가 복합적으로 출산 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설명이다.
출산율 연구원 안나 로트키르히는 핀란드의 전국 설문조사를 인용해 “자녀를 갖지 않겠다고 답한 젊은 층의 비율이 2010년대 초반에 세 배로 늘었고, 현재까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육아가 실제보다 훨씬 큰 희생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소규모 가족에서 성장한 세대는 아이와 함께하는 삶의 의미와 기쁨을 충분히 알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여행과 개인주의적 삶을 이상화하는 소셜미디어(SNS)의 영향도 크다고 덧붙였다.
부다페스트에 거주하는 대학생 안드라스 바라니(28)는 WP에 “젊은 세대는 일종의 실존적 위기를 겪고 있다”며 “세계적 혼란과 기술 변화가 미래에 대한 불안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책이 도움이 될 수는 있겠지만, 문제는 훨씬 더 복잡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X(옛 트위터)를 통해 유럽의 출산율 하락을 언급하며 “인구 붕괴가 가속화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폴란드의 합계출산율은 여성 1인당 약 1.1명으로 유럽 최저 수준이며, 2025년에는 1.05명까지 떨어질 것”이라며 “인구 감소 추세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한다”고 주장했다.
김민주 기자 minj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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