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6일 김해공항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부산 기장군의 한국원자력환경복원연구원(원복연)에 들어서자 아파트 2층 높이의 설비가 한눈에 들어왔다. 코스닥 상장사인 오르비텍이 정부 지원을 받아 이달 초 구축한 이 장비는 원전을 해체할 때 생기는 방사성 금속 폐기물을 하루 최대 1.8톤까지 제염한다.
용융로에 금속 폐기물을 녹여 방사성 불순물을 걷어낸 뒤 고열 처리 등을 거치면 일반폐기물처럼 매립하거나 재활용할 수 있다. 고위험 폐기물은 작업자가 원격으로 처리하도록 설계해 안전성을 높였다.
도은성 오르비텍 대표는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 해체 승인만으로도 향후 10년간 3조원 규모의 원전 해체 시장이 열릴 것”이라며 “10여년간 정부와 관련 연구개발(R&D)과 선행 과제를 진행해 쌓아 온 저력으로 오르비텍이 시장을 주도하는 ‘키맨’이 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문을 연 원복연은 국내 유일의 원전 해체 전문 연구기관이다. 오르비텍은 이곳에 방사성 금속 외에도 매일 콘크리트 폐기물 700㎏을 제염하는 설비를 선제적으로 구축했다. 방사능에 오염된 콘크리트를 기계에 넣어 650도의 고온에서 두 시간가량 말린 뒤 시멘트와 자갈 등을 따로 떼어내는 차세대 기술을 구현한 게 특징이다.
도 대표는 “콘크리트 내 자갈 등을 재활용할 수 있어 콘크리트를 깨부숴 처리하는 기존 방식보다 폐기물 처리 비용을 절반가량 줄일 수 있다”며 “전 공정을 밀폐 라인으로 만들어 분진에 의한 방사선 피폭 가능성을 원천 차단했다”고 강조했다.
이런 설비를 구축하기 위해 오르비텍은 2010년 초반부터 일찍이 원전 해체 시장을 ‘블루오션’으로 보고 기술력을 쌓았다. 주력 사업인 방사선 관리 용역 서비스는 2016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이 선택할 정도로 역량을 쌓았지만, 시장의 한계가 명백하다는 판단에서다.

도 대표는 “원전 강국인 한국에서는 방사선 관리 기술 격차가 미비할 정도로 산업이 발달해 관련 회사 7~8곳이 시장을 비슷하게 점유하고 있다”며 “해외로 눈을 돌려 사세를 키우기 위해서라도 신사업 개척은 필수”라고 말했다.
또 다른 신사업인 소형모듈원자력(SMR)은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오르비텍은 지난달 미국의 SMR 기업 플라이브에너지와 업무협약(MOU)을 맺으며 이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도 대표는 “우라늄을 연료로 사용하는 대다수의 SMR 기업과 달리 플라이브에너지는 안전성이 높은 토륨을 활용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며 “이 기술을 이전받아 향후 아시아·태평양에서 SMR 수주 및 사업권을 확보하는 게 장기적인 목표”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인수한 특수조명 제조업체 파인테크닉스에 대해서도 “사업 다각화를 이끌어낼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5월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개발한 차세대 전투기 KF-21(보라매)에 제품을 공급해 미국 보잉 협력사 위주의 고객사를 다양화했다. 도 대표는 “내년부터 보잉의 생산 물량이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좋아지면 실적도 나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미래 먹거리 투자에 적극 나서며 올 한 해 실적은 주춤할 전망이다. 오르비텍은 지난해 매출 665억원, 영업이익 7억원을 올렸다. 올해는 3분기 누적 기준 424억원의 매출과 9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도 대표는 “지난 1월 자회사 디엔에이링크를 240억원에 매각해 얻은 현금 자산이 아직 건재하다”며 “2027년 원전 해체 사업에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실적을 토대로 이듬해에 매출 1000억원을 달성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종환 기자 won040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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