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때 우리가 다르다는 걸 진심으로 이해했다면, 어쩌면 지금은 같이 있지 않았을까."
연극 '터키 블루스'는 튀르키예가 터키로 불리던 1990년대를 함께 보낸 두 남성이 서로를 추억하며 펼쳐내는 추억담을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낸 공연이다. 90년대 대표곡들을 추려 완성한 선곡 라인업, 객석과 함께 대화하고 호응을 이끌어내는 건 콘서트와 흡사하고, 튀르키예에서 직접 찍어온 무대 뒤 영상은 영화를 방불케한다. 학창 시절 모범생 시완(김다흰)과 어디로 튈지 모르던 반항아 주혁(전석호)은 전혀 다르지만 같은 공간을 꿈꾸며 시간을 보냈고, 그 기억으로 현재를 살아갔다. 그리고 그들이 펼쳐내는 그간의 이야기가 110분 공연의 주요 스토리다.
2016년 무대 이후 무려 10년 만에 돌아온 '터키블루스'는 시완과 주혁, 두 남자의 깊은 우정과 서사를 다양하고 독특한 형식으로 풀어냈다. 두 사람은 한 무대에 있지만, 다른 공간을 향유한다. 각기 다른 말을 하지만, 이들의 대화는 하나로 연결된다. 그 연결점의 도구로 가장 강력하게 사용되는 게 음악이다.

'터키 블루스'에서 음악은 단순한 배경 음악의 존재감을 넘어선다. '악어떼'로 불리는 코러스들뿐 아니라 마이크 앞에 서는 시완 역시 직접 기타를 치는 등 라이브 연주가 이루어진다. 주혁 역시 청자이자 연주자, 혹은 코러스로 다채롭게 참여하며 하나의 공연을 완성한다.
이때 등장하는 노래는 패닉의 '왼손잡이',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 더 블루의 '너만을 느끼며', DJ DOC '머피의 법칙' 등으로 당시 청년들을 위로하고 열광시켰던 국내 가요 명곡과 귀에 익숙한 팝송들을 폭넓게 아우른다.
음악은 극의 분위기를 전환시키고 두 인물의 심리적 변화를 섬세하게 전달하는 언어다. 노래 한 곡 한 곡이 끝날 때마다 관객들은 당시의 순수했던 시절로 돌아가 깊은 향수를 느끼며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한다. 음악을 극의 핵심 서사로 활용하면서 '터키블루스'는 단순한 연극을 넘어 복합적인 예술적 경험을 제공한다. 여기에 절묘하게 무대 뒷편으로 펼쳐지는 튀르키예의 낯선 정경과 익숙한 멜로디의 교차는 이 작품의 독특한 매력으로 꼽을 만하다.

여기에 배우들의 진솔하고 때로는 즉흥적인 대화는 토크쇼를 연상시키며 관객과의 친밀도를 높이고, 극 중 인물 간의 심리적 거리감을 좁힌다. 관객들에게 퀴즈를 내 맞히도록 하고, 튀르키예 커피를 무대 위에서 직접 끓여 맛보도록 하는 등 눈과 귀, 코와 입까지 체험할 수 있도록 한다.
다채로운 장치를 통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건 결국 두 남자의 우정이다. 시완과 주혁은 결국 각기 다른 사람들과 각기 다른 방식으로 어린 시절부터 버킷리스트로 꿈꿨던 튀르키예를 여행한다. 광활하게 펼쳐진 파타라 해변을 비롯해 카파도키아의 열기구 투어 등 관광청 홍보 영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채로운 자연 경관과 도시의 정취가 펼쳐지는 가운데, 이들은 서로의 기억들을 떠올린다.

그토록 서로를 아끼고 동경하던 두 사람의 갈등, 그리고 깜짝 놀랄 만한 반전까지 숨 가쁘게 이어지면서 극의 몰입도는 더욱 고조된다. 특히 2013년 초연 때부터 2016년 무대까지 호흡을 맞춰온 전석호와 김다흰이 10년 만에 다시 시완과 주혁 역으로 돌아와 농익은 케미스트리를 선보이며 마지막까지 눈을 뗄 수 없도록 한다.
전석호와 김다흰은 청춘의 풋풋함과 함께 세월이 흐른 뒤의 회한, 그리고 변치 않는 우정의 끈끈함을 섬세하게 표현해낸다. 긴 시간 동안 연기 경험을 쌓은 두 배우는 캐릭터에 깊이와 성숙미를 더하며 단순한 재연을 넘어섰다.
두 배우가 만들어내는 완벽한 호흡은 마치 실제 오랜 친구의 모습을 엿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자연스럽다. 노래와 연기를 오가며 감정의 진폭을 능숙하게 조절하는 이들의 앙상블은 10년이라는 공백이 무색할 만큼 견고하다. 그들의 진정성 있는 연기는 이 작품이 깊이 있는 인간 관계를 다룬 수작임을 다시 한번 입증한다. 만 14세 이상 관람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오는 2월1일까지 상연된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