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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광엽 칼럼] 기업 유보금 80조 '증시 살포 유도법'

입력 2025-12-16 17:37   수정 2025-12-17 00:18

승자 독식의 인공지능(AI)·반도체 패권 전쟁은 ‘쩐의 전쟁’으로 감각된다. 투자 단위 자체가 다르다. 수십조, 수백조는 기본이고 수천조원 베팅까지 거론된다. 맨 앞줄에 미국이 달린다. 오픈AI가 주도하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만 450조원, 구글·메타 등 빅테크의 데이터센터 건설에는 최소 7000조원(약 5조달러)이 투입된다. 정부 주도로 미래산업에 올인 중인 중국은 올 R&D 예산이 800조원이다. 대만 TSMC도 미 반도체 팹 건설에만 220조원을 들이붓는다.

한국은 가랑이가 찢어질 판이다. 150조원짜리 거대 ‘국민성장펀드’를 지난주 호기롭게 출범시켰지만 가슴 졸이는 올인 베팅에 가깝다. 산업은행이 무려 75조원의 첨단기금채권을 찍고 5대 은행이 10조원씩 갹출해야 겨우 자금이 충당된다. 투자 손실은 은행권이 우선 떠안는 구조여서 혹여 방향 착오가 생기면 시스템 위기로 번질 수 있다.

쩐의 전쟁 와중에 자칫 민간 투자 재원을 말려버릴 자충수 입법이 초읽기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 상법 개정 얘기다. ‘소각만으로 코스피가 40%는 뛸 것’(강성부 KCGI 대표)이라는 설익은 ‘썰’이 등장한 지 2년여 만의 초고속 입법이다. 기세 오른 토종 행동주의와 포퓰리즘 정치의 잘못된 만남의 결과다.

상장사 자사주는 어림잡아 80조원 규모다. 10곳 중 7곳꼴로 보유 중인 상황에서 소각 의무화는 기업 현금의 증시 공중 살포 명령과 다를 바 없다. 자사주 보유 상장사의 절대다수(89%)인 중소·중견기업엔 국가 폭력으로 감지될 것이다. 국민성장펀드에 배정된 50조원의 초저리대출을 타내려고 벌써 긴 줄이 늘어선 마당에 이런 역주행이 없다.

감자 비율만큼 주가가 오를 가능성이 있지만 발행주식 수 감소 탓에 회사 가치(시가총액)는 불변이다. 원론적으로 그렇다. 감자로 증시를 떠받칠 수 있다면 어느 나라가 자본시장을 걱정하겠나. 무리한 소각이 기업 유보금을 소진시켜 성장을 저해할 가능성도 적잖다. 인텔 보잉 스타벅스가 2류로 밀려난 것도 ‘주주 환원하겠다’며 자사주를 수백조원씩 태운 탓이 크다. 삼성전자도 반면교사다. 10년 새 70조원가량 소각했지만 ‘4만 전자’ 추락의 수모를 겪었다.

여당은 소각으로 자본 효율을 제고할 수 있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투자를 외면하고 현금을 쌓아두는 행태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 요인이라는 설명이지만 왜곡이거나 오해다. 한국 상장사의 ‘영업현금흐름 대비 자본지출비율’은 인도와 함께 주요국 최상위권이다. 벌어들인 돈을 설비, 무형자산 등에 재투자하는 비율이 월등하다는 얘기다.

소위 ‘자사주 마법’으로 소액주주 이익을 침탈한다는 비난에도 균형감이 필요하다. 분쟁 시 자사주를 ‘내 편’에 넘겨 대주주 지분율을 끌어올리는 방식은 2011년 상법 개정이 정확히 의도한 바다. 그즈음 SK·소버린 사태, 칼 아이칸의 KT&G 공격이 잇따르며 경영권 보호 장치 도입에 대한 공감이 컸다. 다른 선진국처럼 포이즌필, 차등의결권 제도가 우선 고려됐지만 최종 선택은 자사주였다. ‘주주 평등의 원칙’을 덜 훼손하는 유연한 해법이어서다. 이사회 결의로 손쉽게 처분하고 신주 배정권에 기초한 대주주의 지배력 강화를 용인하는 현 제도는 그렇게 설계됐다. 장기 성장을 중시하는 대주주 이익을 때로는 여타 투자자 이익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자성과 냉정한 인식의 발로다.

자사주발 소액주주 이익 훼손 사례가 적잖은 게 부박한 현실이다. 그래도 ‘소각 의무화’ 같은 감정적 대응보다 ‘처분 공정화’를 고민하는 게 순서다. 전략적 제휴에 활용하는 등 자사주는 기업 경쟁력 제고의 핵심 도구여서다.

지난해 66곳이 행동주의의 공격을 받았다. 미국(592곳) 일본(96곳)에 이어 세계 3위다.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집중투표제 의무화’ 같은 갈라파고스 규제에 이어 자사주까지 무력화되면 한국은 투기펀드 본진의 놀이터로 전락할 것이다. 소각론자들은 자사주를 태우면 주주 신뢰가 높아져 경영권이 자동 방어된다고 강조한다. 순진하면서도 위험천만하다. 행동주의는 ‘건전한 감시자’를 자처하고 벌처펀드보다 세련된 매너로 접근한다. 하지만 머니게임에 능한 기업 사냥꾼이라는 본성은 불변이다. 황금알 잘 낳고 있는 거위를 강하게 키운다며 모래주머니를 줄줄이 채우는 방향착오와 과욕, 이쯤서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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