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문정 음악감독은 지난 20여 년간 한국 뮤지컬 시장의 폭발적 성장을 최전선에서 진두지휘했다. ‘오페라의 유령’ ‘레 미제라블’ ‘맨 오브 라만차’ 등 국내에 상륙한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의 초연을 도맡아온 한국 뮤지컬계의 독보적인 마에스트라다. 그런 그가 이끄는 국내 최초이자 최장수 뮤지컬 전문 오케스트라 ‘The M.C 오케스트라’가 창단 20주년을 맞았다. 서울 세종문화회관 백스테이지에서 최근 만난 김 감독은 지난 20년의 소회를 묻자 관객의 변화부터 이야기했다.
“뮤지컬 시장이 커지면서 관객 수준이 놀랍도록 높아졌습니다. 예전에는 ‘누가 나오느냐’ ‘어떤 작품이냐’가 전부였죠. 지금은 ‘어떤 음악을 하느냐’ ‘어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느냐’를 따져 묻는 시대가 왔습니다.”
김 감독은 이런 변화를 뮤지컬 시장이 성장했다는 확실한 신호라고 읽었다. 무대 아래 어두운 피트(pit·오케스트라 연주석)에서 극을 받치던 연주자들이 이제 무대 위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 감독이 이끌어온 뮤지컬 전문 오케스트라의 20년은 한국 뮤지컬산업의 성장과 궤를 같이한다. 그는 “민간 오케스트라가 20년을 버텼다는 건 기적 같은 일”이라고 했다. “1995년 무렵 1년에 한두 편이던 뮤지컬이 이제는 한 해 500편 넘게 올라갑니다. 상전벽해죠. 시장이 커지면서 ‘뮤지컬 전문 연주자’라는 확고한 직업군이 생긴 것이 가장 뿌듯합니다.”
그는 “초창기엔 클래식 전공자들이 잠시 거쳐 가는 아르바이트 정도로 인식됐는데 지금은 단원들이 이 일로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으며 인생을 설계한다”며 “그만큼 시장이 단단해졌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오케스트라의 생존 비결은 ‘유연함’이다. 클래식의 문법에 갇히지 않고 전자 악기를 섞거나, 플루트로 국악기 주법을 구사하는 등 장르 파괴를 두려워하지 않는 강점을 지녔다. 이는 한국 뮤지컬 특유의 ‘속도전’이 만들어낸 경쟁력이기도 하다.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는 한 작품이 오픈하면 수십 년간 롱런하지만 한국은 길면 1년, 짧으면 2~3개월 만에 작품이 교체되는 ‘로테이션 시스템’이에요. 그 덕분에 저와 단원들은 쉴 새 없이 새로운 장르와 악보를 흡수해야 했죠.”
‘과거’ 레퍼토리는 뮤지컬 ‘엘리자벳’ 초연 당시 김선영 배우의 노래를 13년 만에 들을 수 있다. ‘에비타’도 초연 당시 곡, ‘레미제라블’ 초연 때 박지연 배우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공연 중인 ‘데스노트’를 대편성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편곡해 웅장함을 더했다.
하이라이트는 ‘미래’다. 내년 한국 상륙 예정인 디즈니 뮤지컬 ‘겨울왕국(프로즌)’과 연극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수록곡을 연주한다. 김 감독이 준비 중인 창작 뮤지컬 ‘몽유도원’의 곡도 이날 최초 공개된다.
관객이 객석을 벗어나 무대 위 주인공이 되는 특별한 시간도 마련된다. 이벤트를 통해 선별된 관객에게 40인조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반주에 맞춰 노래할 기회를 준다. 김 감독은 “일반인이 주는 날것의 신선한 감동은 프로의 무대와는 또 다른 울림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조민선 기자 sw75j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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